최근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정부의 개혁작업을 더 이상 확대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잘 다지는 선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다.개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등 '개혁 피로'가 쌓이고 있다는 게 그 논거.
하지만 실질적 개혁은 아직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도를 높여 더 늦기전에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반박 또한 거세다.
■개혁 강화해야 -피로 운운은 기득권 소리…
최근 일각에서 이제 개혁을 마무리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말이 마무리지 실제로는 개혁을 중단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지금과 같은 개혁은 중단해야 한다.
개혁이라는 구호는 크게 외치면서 실제로는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무늬만 개혁'이기 때문이다.
개혁이 장기화하면서 개혁 피로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누가 개혁에 피로를 느끼는가.
국민의 정부가 피로한가. 개혁을 이룬 게 뭐가 있다고 벌써 피로를 느끼는가.
국민의 정부는 개혁의 시늉만 내다가 말았을 뿐이다. 국민이 피로를 느끼는가.
국민이 피로를 느낀다면 개혁을 한다고 말만 앞세우고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개혁을 추진한다면 개혁 대상인 일부 기득권층은 피로하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오히려 신바람이 날 것이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개혁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가장 핵심적으로 꼽았던 개혁과제는 개혁입법과 재벌개혁이었다.
개혁입법의 현주소는 어떤가. 인권법만 알맹이가 빠진 채 만들어졌을 뿐 다른 개혁법안들은 기약없이 뒤로 미뤄졌다.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있다.
부패방지법과 돈세탁방지법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을 쏟아붓고도 재벌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리해고의 칼날 아래 노동자들만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구조조정은 마무리되었다.
개혁이 실패한 까닭은 개혁의 청사진이 불투명했고, 개혁의 사령탑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국민과 함께 하는 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IMF라는 위기국면임을 인정하지만 국민의 정부는 응급조치만 하다가 말았다. 응급조치의 성과에 자만해서 근본적 개혁의 추진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소수정권의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국민의 정부는 통합에 급급하다 개혁의 대상에게 개혁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개혁이 대통령의 입에서만 오르내릴 뿐 정부ㆍ여당은 개혁을 모른 체하거나 오히려 개혁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권법을 왜곡시키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막고, 이자제한법 부활을 반대한 게 바로 정부ㆍ여당이었다.
개혁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가 더 좋은 사람들은 개혁이 싫을 것이다.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이득을 보는 사람도 개혁이 싫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물론 개혁을 지지한다고 해서 개혁과정에서 필수적인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반드시 강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사회구조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개혁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과정의 고통분담이 이뤄졌다면 국민들이 개혁을 지지하지 않았을 리 없다.
국민의 정부에 주어진 개혁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의 개혁의지는 아직도 빛 바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개혁의 드림팀을 구성하고 심기일전해서 개혁을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손혁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개혁 마무리할때 -정부정책 신뢰 낮은 상황…
최근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추진해 온 제반 개혁정책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개혁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과연 현 시점에서 개혁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외환위기 당시의 대외신인도 추락과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ㆍ사회의 전반적 개혁의 실시는 불가피했고 그 성과도 컸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관행이나 의식이 크게 바뀌는 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제 근로자도, 기업도, 금융기관도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모럴 해저드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일종의 사회적 긴장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수준 높은 상태로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대단히 크다.
그러나 정부 주도에 의한 개혁이 이해 관계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발목잡혀 그 성과가 훼손된 부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의약분업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못하면서 정책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기업ㆍ금융부문은 시민단체의 압력에 의해 시장원리가 무시된 입법안이 마련되어 그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불확실성만 증대시켜 소비와 투자위축에 의한 경제침체의 요인으로 연결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현재처럼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낮은 상황에서 정책의 전달경로가 왜곡되면 개혁에 따른 고통이 단기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시장적인 개혁이 확산되면 비효율성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개혁을 필요로 하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물론 현 시점에서 적당히 지금의 개혁을 중단하면 실익이 없다. 정책혼선과 불신만 가중시킨다. 그렇다고 새로운 개혁을 시도해도 국가경쟁력 증대라는 성과보다는 사회적 비용만 더 커진다.
정부의 기존개혁정책은 지속하되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금년 2월 말로 공공, 노동, 기업, 금융 4대 부문의 개혁에 관한 큰 틀은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사회 전분야에 대한 개방을 확대하여 외부적 충격에 의해 자율 경쟁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혁 성공을 위해서는 추락한 정부정책의 신뢰성 회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국민과 기업에 강력하게 보내야 한다.
특히 마무리가 미진한 정부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지출의 축소, 공기업의 매각 등을 강력히 실천해야 한다.
물론 기업규제의 대폭적인 철폐와 작은 정부의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 소득세, 법인세 등의 세율도 인하하여 정부가 민간부담을 줄여 나감으로써 개혁피로로 인한 경제침체 장기화만은 미리 예방하겠다는 의지와 가시적인 처방을 보여줄 때이다.
엄기웅·대한상공회의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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