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칸 국제영화제는 화려한 '캉캉'으로 시작했다. 개막작으로 '물랑루즈'(감독 바즈 루어만)가 상영되고, 영화속 200년전 파리의 사교클럽 물랭루즈가 칸 해변에 세워졌다.9일(현지시간)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197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지옥의 묵시록'의 디렉터스 컷(감독 편집)을 들고 22년만에 다시 칸을 찾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물랑루즈'의 주연배우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심사위원장인 스웨덴 여성감독 리브 울만, 심사위원인 여배우 줄리아 오몬드, 샤를로 갱스부르, 대만의 에드워드 양 감독이 참석했다.
장편 경쟁부문의 대상인 황금종려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수상작은 20일 폐막식 때 발표된다.
리브 울만 심사위원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어둡고 심각하며 지성에 호소하기 보다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며 "오래 남는 영화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신동일의 '신성가족'만이 단편 경쟁에 오른 한국영화는 영화제보다는 수출쪽에 비중을 두어 튜브엔터테인먼트, CJ 엔터테인먼트 등 5개 배급사가 부스를 차렸고 '파이란' 등 19편이 마켓 시사회를 가진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물랭루즈' 주연 니콜 키드먼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꽃무늬가 가득한 붉은 원피스 차림에 의식적으로 더 즐겁고 밝은 표정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톰 크루즈와의 이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든 니콜 키드먼(33). 9일(현지시간) 제 54회 칸 영화제 개막작 ‘물랑루즈’의 여주인공 ‘사틴’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에게 던져진 질문 역시 그런 것이었다.
“개인적인 고통이 많았을텐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이 영화에 더욱 열정을 쏟은 것인가.”
혹시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모두 긴장하는 순간, 그는 역시 배우였다. "그런 질문이 오히려 고맙다”면서 “사생활의 어려움이 열정을 더욱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자랑스럽다. 칸 영화제에까지 나와서 더욱 자랑스럽다.” 니콜 키드먼으로서는 ‘물랑루즈’가 저주스러울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 이혼을 했으니까.
“오히려 반대다. 구원이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을 수호천사로 생각한다.” 그는 ‘물랑루즈’를 찍으면서 느꼈던 기분을 ‘즐겁고, 흥분됐다’는 두 마디로 표현했다. 그곳에 춤과 노래와 사랑, 그리고 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완 맥그리거와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아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냉랭했다. 그러나 노래와 춤이야말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서로 ‘잘한다’며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그는 이완 맥그리거가 부르는 엘튼 존의 ‘유어 송’을 들을 때마다 마술에 걸린 것처럼 작품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주 재미있고 에너지가 넘쳤다.
러브 아이콘(icon)으로 보였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배우로서 내면에서 분출하는 정열을 발견했다. 멋지고 열광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 영화를 계기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쇼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선 체력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육체적으로 연기보다 힘들다.
춤, 노래, 연기를 할 수 있는 따뜻한 몸 만들기 등 준비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너무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좀 더 몸을 추스리고 나서 기회가 온다면 고려해 보겠다.”^그는 촬영도중 무릎 부상도 당했다.
그 때문에 새 영화 ‘패닉 룸’의 캐스팅에서 제외됐다. 부상으로 쉬려고 했지만 스튜디오에서는 바로 뒤에 ‘스타워즈’ 촬영이 있어 강행군을 해야했다. 또 어떤 곡은 300번이나 듣고 따라 부르기를 반복해야했다.
지금은 무릎도 나았고, 기자회견 도중 담배 이야기를 하면서 이완 맥그리거의 담배를 빼앗아 피우는 장난도 했다.
그는 “바즈 루어만 감독이 배우를 사랑하고, 친구이며, 아티스트인 동시에 인간적으로서 감정의 여행을 함께 한 사람”이라고 했고, 많은 노래를 부르도록 허락해준 뮤지션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여유있는 모습에서 니콜 키드먼이 이혼의 아픔을 잊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물랑루즈’에서 사틴이 결핵으로 피를 토하는 아픔 보다는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과의 이별을 더 고통스러워 하듯이.
칸 영화제에 참가한 니콜 키드먼. 그는 “사생활의 어려움이 영화에 열정을 더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칸=이대현기자
leedh@hk.co.kr
■물랑루즈
'물랑루즈'(Moulin Rougeㆍ빨간 풍차)는 뮤지컬이다. 그러나 평범한 뮤지컬은 아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전작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고전적인 소재에 현대적 감각을 입히고, 동화적 상상력과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 화면합성을 동원해 200년전 파리 최고의 사교클럽을 부활시켰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신세대 영화로 이끈 것이 '총'과 '도시적 정서'였다던 '물랑루즈'를 현대적 뮤지컬로 만든 것은 '20세기 후반의 팝'이다.
폴 메카트니, 엘튼 존, 티나 터너에서 마돈나까지. 그들의 노래가 적절히 불려지고, 절묘하게 변주되면서 한바탕 요란한 쇼를 연출한다.
그 속에 비극적 사랑을 풀어놓는다. 가수 사틴(니콜 키드먼)과 시인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만나 몬로스 공작(리처드 록스버그)에 의해 위기를 겪고, 사틴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지나치게 단조롭고 상투적인 스토리 구성이 영화를 단순한 볼거리인 그야말로 '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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