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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병에 걸린 아이들 / (3.끝) 좌절하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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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병에 걸린 아이들 / (3.끝) 좌절하는 청소년들

입력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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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고교 2년생이던 최모(18)양은 지난해 초 연예기획사의 제의를 받아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가 6개월 만에 빈손으로 귀향했다. 기획사가 자금부족을 탓하며 앨범을 만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이후 그는 친구들의 비웃음과 자괴감에 시달리다 학업마저 접었다.너무나 많은 청소년들이 소중한 시기를 연예계의 허상에 취해 보내다 결국 좌절의 늪으로 빠져든다. 다른 가능성을 준비 못한 이들에게 미래는 너무나 힘겹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최양 경우는 그래도 포기가 이른 편. 연예인 지망 청소년 대부분이 보통 3년 이상을 허망한 꿈에 매달리다 빛 한번 보지 못한채 차가운 현실로 돌아온다.

고1때부터 인기댄스그룹의 백댄서로 활동해온 김모(20)양은 요즘 앞날을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1~2년 후면 백댄서로서는 ‘정년’. 하지만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이나 자신감도 없다.

신인 연기자를 발굴하는 서울 강남의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사실 10명중 한두 명의 성공 가능성을 바라보고 하는 일”이라며 “나머지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털어 놓았다. 또 다른 기획사 매니저도 “허상이 워낙 큰만큼 연예인 꿈이 꺾인 아이들의 좌절감은 매우 심각하다”며 “아무 대안도 마련못한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예인도 화려하지 않다

그 어려운 기회를 잡아 연예인이 되어도 대개의 생활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3년째 드라마의 단역으로 맴도는 이모(21)씨는 4개월 전 한 나이트클럽에 ‘얼굴사장’으로 취업했다. 연예계 언저리에서 쌓은 안면을 동원, 나이트클럽의 ‘물’을 유지하는 것이 일. 이씨는 “웬만한 고급 옷가게, 카페, 술집 등마다 연예인 얼굴사장이 한두 명씩은 있다”며 “여자는 유흥업소에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 그는 또 “연예계 전체를 통틀어 연예활동만으로 생계가 가능한 이는 100명 남짓”이라며 “‘태반은 교통비를 걱정하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20년 경력의 한 유명 매니저는 “올해 최대의 신인으로 꼽히는 탤런트 소유진 같은 스타를 키워내기란 5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말했다.

■ 기획사 횡포에도 멍든다

인터넷의 모 연예 홈페이지에는 기획사들의 사기행각을 고발하는 회원들의 글이 거의 매일 오른다. 캐스팅을 미끼로 금품 및 성 상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 자신을 ‘래퍼(Rapper) 지망자’로 소개한 한 여성회원은 “음반사에 프로필을 제출한 후 매니저란 사람이 캐스팅을 조건으로 ‘사귀자’고 치근댄다”고 전했다.

모델 지망생인 또 다른 회원은 “발탁을 조건으로 340만원을 요구받았다”며 자문을 구했다. 실제로 이 시리즈가 나간 이후 청소년들의 연예인 꿈을 부추켜 대뜸 돈부터 요구하는 업계의 사례들이 숱하게 접수됐다.

한 무명 연예인은 “기획사를 비롯, 연예관련 유.무명 업체가 족히 1,000개는 넘을 것”이라며 “미미한 연예계 수요에 비해 이처럼 관련 산업이 지나치게 비대한 것도 그 많은 청소년들을 허황한 꿈으로 몰아가는 한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반짝스타들의 초라한 몰락

청소년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스타들의 뒷 모습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크게 각광받았던 3인조 댄스그룹의 멤버였던 S씨(28)는 현재 유명 댄스가수들의 무대기획자. 하지만 그는 ‘드물게 잘 풀린’ 경우다.

“팀 동료 중 한명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다른 한명은 줄곧 가요계를 기웃거렸으나 20대 중반을 넘긴 나이 때문에 받아주는 곳이 없어 여전히 ‘놀고’ 있다”고 전했다

. S씨는 “연예계에 있으면서 겉 멋도 웬만큼 든 데다 학력이나 기술이 일천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인으로의 복귀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주위의 반짝 스타들 대부분이 소규모 장사를 하거나 실업자 신세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거의 스타 반열에 올랐던 가수 C씨는 지금은 한 유명연예인의 로드 매니저. “온갖 수발을 드는 처지가 참담하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는 그는 “하지만 아는 것도, 공부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현실 세계에 나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떨궜다. 인기그룹 god의 매니저 정해익씨는 “설사 연예인이 된다해도 10대 위주의 부박한 연예풍토 때문에 생명이 극히 짧다”며 “그런데도 다들 실패나 좌절 이후는 생각지않고 대책없이 화려한 환상만 쫓아다니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기형적 연예인 충원

아이들이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연예계를 선뜻 만만하게 생각하는데는 우리의 기형적인 연예인 충원구조도 한 몫을 한다.

요즘 가장 각광받는 신인 연예인 발굴처는 서울 강남이나 이태원, 신촌 일대거리나 카페, 나이트클럽 등이다. 이런 곳은 어떻게든 ‘관계자’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튀는 청소년들로 흘러 넘친다. 실제로 수많은 연예인들이 방송국 공채나 공개오디션 같은 정상통로가 아닌 이런 곳에서 캐스팅됐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10대의 우상들 상당수가 이런 곳에서 ‘발견’돼 기획과 마케팅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며 “당연히 스타란 재능을 타고나거나, 각고의 수련을 거친 결과물이 아니라 요행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자질과 소양을 갖추지 못한데다 자생력까지 부족해 ‘반짝스타’로 단명하거나 사회적 빈축을 사는 연예인이 양산되는 것도 이런 풍토와 무관치 않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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