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오히려 피해자예요. 욕하지 마세요.” “넘어진 지가 잘못이지.”올해 초 한 여중생이 모 댄스그룹의 차를 쫓아가다 또래들에게 밟혀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인터넷 사이트에 올랐던 청소년 팬들의 반응이다. 애도나 자성대신 비판여론으로 인해 오빠가 자칫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내용들이다.
청소년들이 무작정 연예인의 꿈에 매달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연예인을 선호하는 차원을 넘어 그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스타열병도 도를 넘었다.
학교현장은 이미 연예문화에 점령당한 지 오래. 한두 가지 연예인 따라하기를 못하거나 최신 연예뉴스를 모르면 ‘왕따’당하기 십상이고, 아예 스타에 대한 정보량이 친구를 구분하는 잣대가 돼 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여학생들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서울의 모 중학 K(31ㆍ여)는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예전 같으면 우쭐했을 모범생은 오히려 ‘범생이’로 경원시되고, 그 또래면 으레 한번쯤 심취했던 다양한 교양취미들은 압도적인 연예문화에 짓눌려 찾아보기 힘들다”고 혀를 찼다.
또다른 고교 교사(42)는 “지금은 선생님이라도 교실에서 특정 스타를 비판하거나 연예문화의 천박성 등을 말하는 것은 금기”라며 “문제는 다양해야 할 아이들의 의식이나 행동양태가 연예문화로 획일화해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요즘 일부 청소년들에게서는 스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상대편에 대한 공격성 등 집단 편집증상에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마저 왜곡되는 심각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어 이젠 어떤 형태로든 ‘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최원기 책임연구원은 “학교교육이 지식전달에만 치중, 민주시민에 필요한 권리와 의무,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며 “이 때문에 사회적 자아를 찾아나선 청소년들이 대중매체 속의 화려한 연예인 모습에 빠져 맹목적이고 빗나간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 사회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연예인 본받을만한가
"아차."얼마전 TV 퀴즈에서 한 젊은 연예인은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지자 얼른 답을 지웠따.'닭'을 '닥'으로 쓴 때문.하지만 고쳐쓴 답은 '닦'이었다.
연예인 스타들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르는 청소년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상당수는 그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은 커녕, 기본적 교양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상에서도 민망한 비속 표현들이 젊은 연예인들의 입을 통해 거침없이 TV 앞의 청소년들에게 '전염'된다.
마약, 폭력, 음주사고, 병역기피 등 온갖 반사회적인 사건에 연예인들이 자주 연루되는 것도 문제. 지난해 검찰에 적발된 연예인 마약사범은 81명.
더구나 방송들은 '문제 연예인'들을 쉽게 재기용하거나 심지어 변호까지 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동철 박사는 "영상매체들이 연예인을 법위에 군림하는 문화 권력으로 만들어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철기자
■팬덤문화 어느정도
상당수 청소년들의 팬덤(Fandom)문화는 확실히 위험수위를 넘었다.
연예인에게 정신적 위안을 얻는 차원을 넘어, 판단과 가치관까지 '위임'해 버리는 지경에 이른것.
"요즘 스타와 청소년 패들의 관계는 교주와 신도의 시각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말해질 정도다.
# 지난해 인기댄스그룹 멤버를 음주운전으로 적발했던 서울 강남경찰서 직원들은 지금도 고개를 흔든다. 폭주하는 욕설전화로 업무가 마비되고 항의메일로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연예인이 마약이나 병역비리로 문제될 때마다 같은 양상이 반복된다.
스타열병이 청소년들의 판단력이나 도덕성마저 마비시킨 경우다.
#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정신과장은 "현재 청소년들의 스타열병은 연예인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상대를 무조건 깎아내리는 등 대단히 공격적이고 광신적"이라며 "이런 문화가 청소년들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원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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