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수출증가율 마이너스 9.3%라는 참담한 무역성적표 안에는 감춰진 작은 '이변'이 있었다.세계 경기침체로 전반적으로 수출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부 해명과는 대조적으로 기업투자의 바로미터라는 일반기계 업종의 경우 무려 28.9%(1~4월 33.7%)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
이는 연평균 19.9%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한 지난해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산자부 남인석 산업기계과장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후 국내투자가 격감하고 기계류 내수시장이 무너진 뒤 업체들이 살기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성과"라고 말했다.
IMF 직전 30%에 불과하던 기계업종의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은 현재 60%대에 근접했고, 주력시장도 미국ㆍ동남아 일변도에서 중동, 중국, 중남미, 유럽 등지로 확산됐다.
내수 및 미국ㆍ일본등 주력 수출시장이 위축되면서 중국 대만 중동 중남미 동구 등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중견ㆍ중소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또 일찌감치 신흥시장 진출을 준비해 온 기업들은 불황을 잊고 있다. 개미 수출군단의 이 같은 '니치(Nitch) 전략'은 미ㆍ일 편중, 대기업 편중 수출구조 개선은 물론 장기적으로 수출 기반의 큰 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 수원의 반도체장비 생산업체인 선익시스템스 이응직 부사장은 지난 해 말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중국과 대만 시장개척에 나섰다.
"원청업체들의 올해 투자 계획을 보니 답이 안보이더군요. 하청물량을 당초보다 50~60%나 줄이겠다는 업체도 있었으니까요."이 부사장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대만무역관을 통해 관련업체 200곳의 명단을 입수, 맨투맨 마케팅에 나선 결과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고 있다.
이 부사장은 "오늘도 현지 바이어가 공장을 방문해 둘러보고 갔다"며 "내달 중에는 못해도 2, 3 건의 수출계약이 성사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단제조업체인 코리아엔터프라이즈사의 북아프리카 시장 공략도 대표적인 사례. 이 회사 최종길(34)사장은 "유럽시장만 의존하다 보니 경기변동에 취약하고 시장도 정체돼 경영에 애로가 많았다"며 "모로코 알제리 등지서 연내 3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동남아에서 중남미로 눈을 돌려 연초 도미니카에 항생제 등 15만달러 어치 수출에 성공한 대원제약은 과테말라 등 지역시장 확대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자부 김상렬 무역정책국장은 "지금이 신흥시장 개척의 적기"라고 말했다. 미ㆍ일 경기가 좋고, 내수시장이 살아나면 기업들이 '좁은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접수된 총 517건의 세일즈 지원신청 대상지역 가운데 중국이 전년비 120%나 늘어난 것을 비롯해 중남미(60%) 중동(29%) 신청이 폭주한 반면 EU나 일본쪽은 각각 22%와 9.5%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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