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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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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입력
2001.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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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들은 관념과 법도에만 얽매인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가? 엄청난 슬픔 앞에서, 그들도 하늘을 원망하고 운명을 탓했다. 사서의 도리와 삼경의 예법으로 정화된 슬픔, 그것은 이별의 양식이었다.죽은 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선인의 글 43편이 묶여 나왔다. 고려 중기 이규보에서 조선말 이건창에 이르기까지, 모두 35명의 학자들이 묘지명과 묘비명에 남긴 미려한 조문을 뽑았다.

그 깊은 슬픔은 21세기 감성이 쉽게 포착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 줄 한 줄 음미하노라면 강퍅한 가슴은 마침내 일렁인다.

'문에 들면서 부르고 온몸을 던져 마루에 오르며 부르짖느라 간장이 다 찢어졌지.'

7형제 중 여섯째인 열네살 손아래 여동생이 산고 끝에 숨지자 17세기 선비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이 지어 바친 제문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지'의 슬픔은 육화의 절정이다.

일찍 떠난 조강지처를 기리는 글에는 사모관대를 벗어던진 한 남정네가 있을 뿐이다. '아아, 당신의 고생은 뼈에 사무쳤소.

꿈을 꾸면서도 끙끙대며 신음소리를 내고 고뇌가 쌓여 울음으로 터져 나왔으니.' 농암의 동생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의 글도 그에 못지 않는다.

천연두로 세상을 먼저 뜬 아들을 기리는 다산 정약용의 글은 엄정한 실학자라는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킨다.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절절한 안타까움만이 살아 있다.

자신의 노년을 슬퍼하는 글에는 처연함이 가득하다. '땅속 개미들은 입에 들어 오고,파리와 모기는 살을 물어뜯네'여말 선비 남효온(南孝溫)이 스스로 써둔 묘비명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퇴계도 자신의 묘비명(자명ㆍ自銘)을 써,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려는 선비의 고결함을 잊지 않았다. '배운 것이 얼마나 된다고 늘그막에 벼슬을 탐했던가? 죽으면 남김 없이 돌아 가리니, 다시 무엇을 구하랴.

'이 땅에 이런 아픔이 다시 없기를!'저자의 간절한 바람이 책갈피마다 스며든다. 저자 이승수씨는 '김시습 연구' '도스토예브스키' 등 동서양 문학 서적을 펴낸 바 있다.

이씨는 "'한국 문학과 죽음'이라는 대주제를 파고 들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이라고 책의 의의를 요약했다. 책의 후반부는 원문이 모두 소개돼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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