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임-초등생 56% '겜' 중독"걍(그냥), 우리 칭구(친구)하자." "잼(재미) 업떠(없어)"
컴퓨터가 아이들의 언어를 뒤틀고 있다. 인터넷 어린이 채팅 사이트에서 맞춤법에 맞는 대화를 찾아 보기 힘들다.
'소리나는 대로, 줄여서' 적는 채팅의 언어파괴현상은 이미 오래 전 일. 한창 언어규범을 배워야 하는 초등학생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용한다.
초등학생 영어 열풍 한편에 한글 맞춤법은 '몰라도 된다'는 안이한 풍조까지 더해 우리말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대한 중독도 심각하다. 최근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 조사결과, 초등학생의 게임중독이 56.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예삿일이다. 접속자들끼리 집단을 만들면서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 중독성을 더욱 부추김에 따라 폭력성도 일상화하고 있다.
급기야 올 3월 폭력게임에 중독됐던 한 중학생이 동생을 살해하는 충격적이 사건이 있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중독'에 관한한 어떤 아이도 자유롭지 않다.
■동요- 랩·댄스 잘해야 인기
초등학교 3학년인 K군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싸이의 '새'. '당신 너무나 이쁜 당신.'어쩌고 하는, 발음하기조차 벅찬 가사를 줄줄 외워 공책 2, 3장에 빼곡히 적어 놓을 정도이다.
초등학교 5학년 Y군은 장기자랑시간에 댄스그룹의 노래와 몸짓을 고스란히 흉내내어 친구들의 찬사를 받는다.
동요가 고사하는 가장 큰 이유로 관계자들은 '방송의 무관심'을 꼽는다. 지상파의 유일한 동요프로그램인 KBS '열려라 동요세상'은 이번 개편 '폐지'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논현 초등학교 교사 김애경씨는 "1년에 200곡이 새로 만들어지고, 아이들의 취향에 맞춰 박자가 빨라지는 등 동요 생산기반은 건재한다"며 "방송에서 조금만 더 동요가 많이 나온다면 아이들은 가요 대신 동요를 부를 것"이라고 말한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양은경 기자
key@hk.co.kr
■만화 - 일본캐릭터 학용품 '도배'
4월 24~30일 동안 한양문고가 집계한 만화단행본 판매순위의 1위부터 6위까지 모두 일본만화다. 20여년전 일본만화 '마징가 제트' '캔디' 등에 빼앗겼던 동심과 다를 바 없다.
일본만화 '포켓 몬스터', 최근에는 '디지털 몬스터(디지몽)'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키 마우스' 에서 시작된 미국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만화 주인공은 만화라는 공간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다. 가방, 운동화, 필통, 빵 등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활용돼 아이들의 생활 곳곳을 파고든다.
국산만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태권브이' '둘리' 등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켰다. 최근에는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만화산업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춰 볼 때 구멍가게 수준으로 열악하다. '만화는 빌려서나 보는 시간 때우기용일 뿐'이라는 만화 경시 풍조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출판-'해리포터'등 외국책 밀물
지난 해 10월 인터넷 어린이 백화점 인터나루(www.internaru.com)가 초등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독서 실태 조사'결과 '감명 깊게 읽은 책 1위'는 '해리포터 시리즈'(10%)였다.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판타지가 우리 아이들의 정신까지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국내 어린이책 출판 시장은 양적으로는 전체 시장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외국 책 베끼기, 구간 도서 재출간 등 10여년 전과 엇비슷하다.
외국에서 국제도서전이 열리면 국내 출판업자들이 외국 어린이책을 싹쓸이해오는 일도 여전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인기를 얻자 어설픈 판타지 동화도 마구 쏟아지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읽을 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유아와 저학년용 도서는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초등학교 4~ 6년생이 읽을 만한 해리포터 시리즈 수준의 국내 창작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나루 조사에서도 저학년의 51.7%가 한 달에 10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응답한 반면, 고학년은 45.9%에 그쳤다.
어린이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 중 첫번째가 'TV 보기나 놀기가 더 좋아서'(35.9%)라고 대답한 것도 볼 만한 책이 없다는 반증이다.
■방송-쇼·코미디·드라마 탐닉
TV는 강력한 학교이다. "TV가 있는 곳에 어린이가 있다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TV시청 시간은 평일의 경우 2시간 9분, 주말은 3시간 16분에 달했다.
TV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MBC SBS KBS는 초등학생 대상의 만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1~3개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방송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 프로그램 마저 시청 대상인 어린이가 제작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일본 TV가 어린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 반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어린이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화에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넘친다.
어린이들은 대신 성인 대상의 버라이어티쇼나 코미디, 드라마를 많이 본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올해부터 실시한 프로그램 등급제 역시 문제가 많다.
드라마나 코미디, 버라이어티쇼는 등급제 적용을 받지 않아 어린이 보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린이들의 TV시청 지도를 하지 않음으로써 어린이들이 무분별하게 TV에 노출되는 것도 큰 문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배국남 기자
knbae@hk.co.kr
■아동극- 아동극 관람은 '의무방어'
"아이에게 아동극을 보여주겠다며 손을 잡고 온 어머니 대부분은 막상 무대가 오르면 커피숍이나 쇼핑으로 그 시간을 따로 보내기 일쑤죠. 끝날 때쯤 아이를 데리러 와서는 '재미 있었어?'라고 묻는 정도죠."
아동극 무대는 TV나 영화의 절대 권력권에서 벗어나, 어른과 아이가 함께 경험하는 자리다. 아시테지(국제 아동ㆍ청소년 연극 협회) 한국 지부 이사 김병호씨는 국내 부모 대부분이 아동극을 어린이날 특별 선물, '의무 방어전'으로 여기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딴 집 아이들도 보는 터에 우리집이라고 가만 있을 수 없다는, 삐뚤어진 경쟁 의식의 발로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 대표적 아동극단으로는 극단 사다리(마임놀이극), 즐거운 사람들, 놀이터(이상 뮤지컬), 서울 두레 민들레, 예성 동인(이상 전통연희의 현대 아동극화)등이 10년 안팎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올해 어린이날 아동극 무대도 수억대 제작비의 방송사 주최 일회성 특별 무대에 눌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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