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회장은 심심치 않게 재계 출입 기자들의 혼을 빼 놓곤 했다. 그의 아리송한 '방북 행각'이 문제였다.해외에서 그의 행방이 묘연해질 때마다 증시 등 민간 정보 소스에서 방북설이 흘러나오는 통에 확인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단 한번도 그의 방북이 정확히 확인된 바 없지만, 대우그룹은 이미 그 당시 북한에 대단위 공단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을 만큼 대북사업에 열심이었다.
■상당기간 지속됐던 대우그룹의 이런 독주체제는 1997년 환란 이후 그룹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선두로 뛰어나온 것이 다름아닌 현대그룹이다. 작고한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신호탄으로 현대는 명실상부한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98년 드디어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펼쳐지고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됐을 때 현대의 대북사업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배로 보였다.
■그랬던 현대가 나자빠졌다. 금강산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더 이상 부어댈 형편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작년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앞서 "조만간 중동건설 붐에 버금가는 큰 비즈니스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채 1년도 못돼 그런 큰 비즈니스의 주인공 현대가 '내 코가 석자'가 되어 두 손을 드는 지경이 됐다.
■대우는 그룹자체가 풍비박산 났고, 현대그룹은 일대 위기에 빠져 아직도 풍전등화의 신세다. 두 그룹의 말로가 신통치 않은 까닭은 북한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대북사업으로 경영에 헛바람이 들어 부실해진 것인지, 원래 부실해서 북쪽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던 것인지, 복합적 결과인지 아무튼 따져볼 만 하다.
북한에 냉정한 삼성 같은 그룹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극히 대조적이다. 대북사업의 기회와 부담이 특정그룹에 몰리는 '집중 시스템'으로는 제3, 제4의 낙오자만 낳는 징크스가 고착될 지 모른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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