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연휴'기간 중인 일본열도는 3일 저녁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인 김정남으로 보이는 인물의 입국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지면서 발칵 뒤집히는 모습이었다.3일 오후 5시30분께 지지(時事)통신의 긴급 뉴스로 첫 소식이 타전된 후 NHK를 비롯한 TV 방송은 긴급 자막을 내보내고 매시간 김 위원장의 가족 사진을 곁들여 톱뉴스로 전했다.
일본 언론은 그를 김정남으로 확신하는 분위기였으나 "극히 가능성이 크다"는 공안 소식통의 말을 전할 뿐 끝내 단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나는 관광차 입국한 한국인"이라고 부인하던 이 인물이 "나는 김정남"이라고 시인했다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나오자 가족 관계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김정남임을 기정사실화했다.
1일부터 그를 조사했던 출입국 당국과 법무성도 사흘만에 확신을 얻어 외무성에게 조사결과를 통보했다.
휴일인 관계로 당직 근무자만 나와 있던 외무성에는 북동아과와 아시아ㆍ대양주국 관계자들이 잇달아 달려 나왔다.
가와시마 유타카(川島裕) 사무차관은 호텔에서 쉬고 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찾아가 이를 긴급보고할 정도로 사안을 중대시했다. 외무성이 휴일에 단순한 불법입국자 문제로 이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예는 없다.
또 법무성이 신병처리 문제를 외무성과 협의한 끝에 베이징(北京)으로 국외 추방할 방침을 굳힌 것도 최소한 그가 북한 출신임을 확인시킨다.
하지만 법무성 등은 "불법 입국혐의는 개인적인 사안이므로 공표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끝내 신원확인을 거부하는 등 이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민감해진 대북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워 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도 비상이 걸려 관계자들이 잇달아 일본 당국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한 관계자는 "그가 김정남일 가능성은 거의 100%"라면서 이틀간이나 그를 조사한 일본 당국이 김정남임을 확인하지 않는 것은 절차상의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총련 국제국 관계자는 "김정남씨가 평양을 떠나 싱가포르를 여행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면서 "불법 입국을 시도할 리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김정남은 누구
김정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1997년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작은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공식적인 직함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컴퓨터위원회'위원장으로 북한의 IT정책을 주도하하면서 군부내 비밀경찰부대인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요직을 맡고 있다. 지난 1월 김위원장의 중국방문때는 수행하며 중국의 IT기술현황을 둘러보았다.
홍콩의 시사월간지인 광각경(광각경) 최신호(4월15일~5월15일)는 '김정일과 그 맏아들 김정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위원장은 부친으로부터 승계한 권좌를 김정남에게 승계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남은 월북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였다가 이혼한 영화배우 성혜림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김정일의 끔찍한 사랑을 받았던 그는 10대때인 1980년대부터 스위스 프랑스 러시아등을 돌며 유학한 덕에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처음에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던 그는 그후 스위스 제네바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이때부터 컴퓨터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김정남은 외모와 성격, 취향등에서 김정일과 과감하면서도 예민하고 예술방면에 뛰어난 점등 여러방면에서 김정일과 닮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이모이며 1997년 분당에서 살해된 이한영씨의 친어머니이기도 한 성혜랑씨는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등나무집'(지식나라간)에서 "글을 잘쓰는 김정남은 유년시절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아버지가 만들어준 소형 촬영소에서 영화를 시험삼아 제작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정부표정
정부 관계자들은 당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 씨의 일본 불법입국 소식을 믿으려 하지 않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기정 사실화하자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통상부는 3일 오후 늦게 일본 지지(時事) 통신의 보도를 접한 뒤 주일 대사관에 불법 입국 경위와 배경 등을 조속히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 사람들이 위조 여권을 흔히 사용, 해외공작 활동 등을 한다는 얘기는 자주 들었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후계자가 위조 여권을 사용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느냐"며 "일본 정부에 자세한 경위를 알려주도록 요청했지만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김정남 씨의 일본 행이 정치적 목적보다는 컴퓨터 등 첨단산업에 대한 관심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남 씨가 일본 조총련으로부터 입수한 최신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밤새 작동해보는 등 컴퓨터 광이라는 정보를 접한 적이 있다"며 "북한의 IT(정보통신)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김정남 씨가 IT 선진국의 현장 체험을 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측은 일본 정부가 김정남 씨에 대해 추방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일단락할 경우 북일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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