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의 가상 연극, 극단 반딧불이의 '환생구역'"여기는 환생 구역, 망각의 강(江)가. 망각은 천국, 모든 걸 다 잊지!"
이승과 저승의 중간 구역에서 퇴폐적 블루스 선율에 맞춰 영혼들이 악을 쓴다. 인간 세상은 지금 엉망이다. 신은 세상을 창조해 놓고도 다 잊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러나 가장 기쁜 일이기도 하다. 주재자가 없어져 버린 이상, 누구든 딴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 반딧불이의 '환생구역'은 천국에 대한 통념에 지독한 야유를 퍼붓는다. 천국이란 과연 사람이 살만한 데인가, 지금 여기가 인간에게 허여된 최선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후 영혼을 천국행과 지상행으로 가르는 저승 심사구역이 무대다. 때마침 장마철 악천후로 영혼수송용 요람의 발이 묶인 어느 날이다.
영혼들을 선별해 갈곳으로 보내는 중간구역의 사형집행인은 일에 지쳐 있다. "죄없는 영혼이 아니라, 속은 놈, 돈 떼인 놈, 살해당한 놈들만 가는 병신 복지시설"인 천국의 실상을 알기 때문이다.
중간계의 영혼은 인간의 발가벗은 풍경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아직도 본드 냄새에 취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소년, '천국행 1순위는 나' 라며 기대에 부푼 사제, 아기에게 줄 딸기우유를 계속 찾는 엄마 등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도 조금도 변함 없다.
삭막한 고문실 같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다양한 음악 덕에 무대에는 감각적 생동감이 가득하다. 신예 작곡가 박민수가 사용한 블루스, 뽕짝, 성가곡, 록 스타일 등의 음악 덕택에 무대는 뮤지컬을 방불케 한다. 지상의 음악들은 이곳에서 엎치락뒤치락 해 가며, 세상에의 미련을 탐하는 갖가지 영혼을 상징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은 생생한 언어 덕택에 살아 다가 온다. 본드 냄새를 맡다가 올라 온 불량 소년의 거친 말투,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지 못 한 엄마의 안타까움, 사고를 당한 등산가의 오기 등이 살아 있다.
무대는 때로 엽기적이다. 천국을 꿈꾸던 사형집행인이 척추 장애인의 등에 낫을 꽂아, 혹 속에 들어 있는 천국행 티켓을 꺼내는 장면이다.
인간 세계로 가겠다는 척추 장애인에게 날개를 주며 천사장은 내뱉는다. "천국은 신의 정원이야! 저만 아는 거인의 정원." 천국과 지옥으로 굳어져 버린 사후 세계보다, 꿈과 희망이 살아 있는 현실의 팔을 들어 준다.
장성희 작, 최은승 연출, 유하복 김동찬 오재균 등 출연. 10일~6월 10일 아리랑소극장. 화~목 오후 7시 30분, 금ㆍ토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일 오후 3시 6시.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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