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목 빼고 하늘만 쳐다보는 농부-. 대우자동차에 매인 이 나라의 신세가 영락없이 그 짝이다. 한 나라가 일개 외국기업의 '관대한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정부가 장담했던 대로라면 대우차 공장에는 벌써 미 제너럴모터스(GMㆍ지엠)의 깃발이 걸렸어야 했는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당국자들이 작년에 "길어야 한 달 이내"라고 했던 지엠의 최종 인수제안서 제출은 이미 6개월이 지났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한 달이 반년으로 늘어났으니 앞으로 또 반년이 지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여론의 환기가 일 때마다 당국자들은 "조만간 저쪽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군불을 때지만 그것도 '관측''희망''예상'일 뿐 딱 부러진 게 없다. "연내에는 미지수"라는 저쪽 고위간부의 충격적 발언이 나와도 오히려 덮고 감싸기에 바쁜 것이 정부의 태도다.
그러는 사이 대우차는 매달 1천억원의 국민혈세를 잡아먹으며 망조(亡兆)가 깊어 가고 있다.
시간은 무작정 늘어지고, 무엇 하나 속 시원한 해명도 없고, 앞은 오리무중인데 대체 뭘 믿고 정부는 천하태평(?)인지 온통 의문과 의혹 투성이다.
지엠이 정말 대우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침 발라 놓기'식 훼방은 아닌지, 이러다가 죽도 밥도 안되고 걷어차이는 것은 아닌지.. 작년에 포드사에게 뺨 맞은 것을 목격한 국민들로서는 이런 극단적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설령 지금껏 지엠의 우보(牛步)를 선의로 보아준다 하더라도 매각이 성사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누구를 위한 기다림이고 무엇을 위한 해외매각인지 근본적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까지 질질 끌려 다니면서도 "해외매각이 최선"이라는 정부 논리가 절대적인 것인지, 지엠에 매각이 실패할 경우에도 같은 주장이 유효한 것인지 분명히 못박아둘 필요가 있다.
사실 해외매각의 효과라는 것도 어디서도 검증된 바 없다. 우선 당장 골치 아픈 정부의 혹을 떼거나, 오로지 금융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안성맞춤일 수 있다. 그러나 대우차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도 고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실의 호도다.
지엠이 작년보다도 형편없이 낮은 가격을 '강요'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이치다. 입맛에 맞는 자산만 골라 잡으면서 온갖 지원과 특혜를 요구할 것이다. 바로 이런 매각조건의 악화가 해외매각의 타당성을 더욱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싸게 산 물건은 싸구려로 대해 공도 덜 들이게 된다는 것은 기업의 세계에서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다.
지엠은 대우차를 '영구보유 자산'이 아니라 '잠정보유 자산'목록에 올리는 시나리오와 주판알도 튕겨보고 있을 것이다. 지엠이 손털고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다시 우리의 애를 태우게 될지도 모르는 '후환'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해외에 공짜로라도 넘겨야."하는 어느 주한미국기업인의 발언에 흐믓해 하고 있다. 그만한 금융ㆍ재정 지원과 특혜를 가령 '정세영 사단'과 같은 국내 최강팀에게 주어 대우차를 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미국의 포브스지는 미국이 한국차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경쟁할 수 없으면 인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세계가 "기적"이라고 평가해온 기간시설을 우리는 되려 팔아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대우차의 헐값 매각은 대우차 자신뿐 아니라 한국자동차산업 고유의 경쟁력마저 갉아먹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 개월간 그랬듯이 정부 당국자들은 이 달초에 다시 열리는 지엠의 이사회를 기대해 보자고 한다. 그러나 이제 뱃머리가 어디에 놓여있는지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저쪽이 뭐든지 내놓으면 독인지 약인지 구분 않고 얼씨구나 받아먹게 될 정도로 우리는 제풀에 지쳐 판단력을 잃어가고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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