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집 '거울속의 천사'아내는 하늘로 올라갔고 그의 시는 땅으로 내려왔다.
햇볕 좋은 날 서울 대치동에서 김춘수 시인을 만났다. 아내의 기일과 머지 않고, 아내가 신세 졌던 병원 가까운 곳이다. 그는 아내와 사별한 지 이태만에 15번째 시집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 발행)를 냈다.
'이 시집을 아내 숙경(淑瓊)의 영전에 바친다'고 밝혔듯 여든아홉 편의 시는 모두 아내를 위한 서정(抒情)이다. 스무 편 남짓한 작품에선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했으며, 나머지 시에는 슬픔과 한숨을 엷게 물들였다.
그는 "지금껏 이만큼 많은 시를 단시일에 쓴 적이 없다. 아내가 그렇게 이끌어 준 것 같다"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의 시 세계는 관념과 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해왔다. 인간의 성정(性情)을 털어내고 언어에서 의미를 비운 '무의미 시'다. 추모 시집에서는 그러나 지금까지의 창작 과정 대신 감정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었다. 머리 속을 명징하게 울리던 것이 가슴을 치는 시가 됐다.
'내 귀에 들린다. 아직은/오지 말라는 소리,/언젠가 네가 새삼/내 눈에 부용꽃으로 피어날 때까지,/불도 끄고 쉰다섯 해를/우리가 이승에서/살과 살로 익히고 또 익힌/그것,/새삼 내 눈에 눈과 코를 달고/부용꽃으로 불그스름 피어날 때까지,//하루 해가 너무 길다.'('대치동의 여름' 중)
아내에게 바치는 시집이긴 하지만, 그는 시가 자유롭게 읽히기를 바란다. 그는 쇼팽 이야기를 했다. 쇼팽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듣고 한 사람은 총소리 같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빗소리 같다고 했다. 어떤 게 맞느냐고 묻자 쇼팽은 "둘 다 맞다"고 대답했다. 다른 답도 있을 것이다.
그는 '꽃을 위한 서시'와 '물또래'를 소중히 여기지만, 다른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도 있는 것처럼. 새 시에는 '아내의 입김이 스며 있지만', 어떻게 향유하는가는 독자의 몫이다.
상처한 뒤 시인은 천사가 된 아내를 느끼고, 느낌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윤이상 전혁림 같은 통영 친구들이 그리워져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럴수록 점점 외로워진다고 했다.
문인들의 흔한 음주벽도 없고, 바둑 같은 취미도 없다. 눈이 피로해져 오랫동안 독서하는 것도 수월치 않다. 외로움이 깊어지면 또 어떤 시로 맺힐까.
시인은 "어떻든지 시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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