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대회' 참가 자체가 목표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인 54년은 아마도 한국축구가 가장 약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대표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축구를 할 여건도 마련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사상 제일 약한 팀'이 그 해 아시아 최초로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출전하게 될 줄을 그 누가 생각했을까. 22명의 선수가 '공짜'로 세계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월드컵 출전신청을 냈고 아시아예선서 일본을 1승1무로 꺾고 제5회 스위스월드컵 본선티켓을 따냈다.
5회 연속 월드컵본선진출의 대업을 이룬 지금은 '1승' '16강 진출' 등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참가' 자체가 목표였다.
당시 세계최강 헝가리에 0_9로 완패했지만 전반전에 좀 더 과감한 경기를 펼쳤더라면 한 골 정도는 넣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김용식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 최정민에게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라'고 지시했었다.
나는 공격축구라는 말은 잘못된 용어라고 생각한다. 축구 자체가 바로 공격이기 때문인데 수비에 치중해 이기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터키와의 2차전은 더욱 아쉬움이 크다.
당시 터키는 그다지 뛰어난 팀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3골차 승부를 예상했지만 1차전에 출전하지 못한 나이 많은 선배들이 김용식 감독에게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선수가 다 한번씩 뛰어보자"고 간청, 결국 2진이 대거 출전해 0_7로 졌다.
현재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의 역량은 최상이다. 문제는 선수들의 태도이다.
연습이 부족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이것이 패배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후배들이 특정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으면 한다.
우리들의 경험담이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후배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길 바란다.
여담 한 가지. 항간에는 당시 2경기에서 너무 많은 슛을 막다보니 'GK인 내 가슴에 멍이 들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내용임을 밝혀둔다. 진짜 가슴에 멍이들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2경기에서 경기종료 10분을 남겨두고 다리에 쥐가 난 것은 사실이다.
정리=이준택기자 nagne@hk.co.kr
[약력]
1926년 함경남도 함흥생
함남중 졸, 보성전문 중퇴
국가대표 골키퍼(47~54년)
서울은행 감독,국제심판,대한축구협회 국제담당 부회장,아시아축구연맹 심판위원,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 현 대한축구협회 OB연맹 자문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