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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맞은 '태조왕건'의 연화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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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맞은 '태조왕건'의 연화 김혜리

입력
2001.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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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하기보다는 섭섭하죠. 녹화장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다음주 (5월 5,6일) 방영분에서 드디어 최후를 맞는 '연화'김혜리(30). 22일까지 나흘 동안 경북 문경의 세트장에서 마지막 촬영을 했다.

왕건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한 연화는 아들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궁예와 직접 담판을 벌이러 찾아갔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연화는 남편의 손에 부모와 자식, 그리고 본인도 죽임을 당하는, '태조 왕건'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한때 사랑했던 왕건도 그녀를 배신한다. "결국 왕건이 연화를 두 번 죽인 셈이지요. 야망을 위해 정혼녀를 넘겨 주었고, 죽을 때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요."삼국통일의 위업은 달성했을지라도 남자로서는 더할 수 없이 비겁한 인물이라는 평가이다.

사서에는 그 죽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묘사되었다. 제작팀은 이를 차마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 철퇴 사약 등 갖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했으나 결국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휘장 뒤에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파란 불꽃과 연기가 피어 오른다. 그리고 치마에 나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죽음의 정황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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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죽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그렇게 된 편이죠. 비참한 몰골은 안 보여 주니까요."하지만 죽은 뒤에 비오는 야산에 시신이 버려지는 장면을 찍으며 엄청난 고생을 했다.

"자정부터 온몸이 흠뻑 젖어 덜덜 떨었어요. 눈물 반, 빗물 반으로 얼굴이 온통 흥건했지요."1년 반 동안 '연화'로 살아오며 겪었던 복잡한 감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온화하고 기품있는 외유내강형의 여인이지만 궁예의 패악이 심해지며 점차 단호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출연한 100여부 중 종반 20여부는 그야말로 전쟁같았다. "하도 소리지르고, 울고 해서 늘상 눈이 붓고 목이 잠겨 있었지요. 태조 왕건을 제 대표작으로 만들 결심으로 살았으니까요."

1995년 '조광조'의 신씨 부인 역을 시작으로 '용의 눈물' '왕과 비', '왕건'까지. 그는 '왕건'을 끝내며 6년간 걸었던 사극의 '대장정'에 쉼표를 찍는다.

"당분간 어디에도 출연하지 않으렵니다."한동안 따라다닐 '연화'의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이미지'의 무상을 체험한 연기자이다.

서구적인 마스크 때문에 처음에는 '사극 부적합'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렸고 이제는 김혜리가 사극 전문 연기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백만 가지 인물로 변할 수 있다는 게 배우의 매력 아니겠어요?"

하지만 그는 다음에 출연하고 싶은 드라마로 또다시 '사극'을 꼽는다. 6년간 머리염색도 못하고 손톱도 못 기를 정도로 젊은 자연인으로서는 많은 제약이 따르지만 현대극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종결어미'~까'의 어조도 수십 가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연기의 폭이 깊으니까요.

양은경 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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