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5월1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서울에서 죽었다. 향년 73세.영친왕의 이름은 은(垠)이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순빈(淳嬪) 엄씨(嚴氏) 소생이다. 융희 황제 순종의 이복 동생이 된다.
이은은 1900년에 영왕(英王)에 책봉됐고, 순종이 즉위한 1907년에 황태자로 책립됐으나, 그 해 12월에 통감으로 부임해 온 이토 히로부미의 뜻에 따라 11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는 일본에서 마사코(方子)라는 황족 여성을 비(妃)로 맞았다.
1910년의 한일 합방으로 순종이 폐위되자 왕세제(王世弟)로 불렸고, 26년 순종이 승하한 뒤로는 이왕(李王)이라고 불렸다.
그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장에까지 진급했다.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은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은은 63년 11월에야 56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고국에서 7년 동안 병상을 지키다가 작고했다.
여느 왕조의 마지막 군주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흔히 그렇듯, 이은의 라이프스토리도 듣는 이를 침울하게 만든다. 3ㆍ1 운동 이전의 독립운동은 복벽 운동을 한 줄기로 삼았으므로, 역사의 변덕으로 그 시기에 한국이 독립을 이루었다면 이은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공화정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평균인의 정의 감각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결혼을 통해 일본의 황족에 편입되지 않았더라도, 다시 찾은 조국에서 옛 왕족이 주장할 몫은 없어야 마땅하다. 그들은 망국의 일차적 책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우스꽝스러운 행적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과 이(李) 왕가 사이의 혈통적 연결을 은근히 과시했다는 점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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