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너무 움츠리고 있다. 불황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불가피한 생존전략이지만, 과도한 '축소지향형 경영'은 경기위축을 가속화하고 성장잠재력을 수축시켜 장기불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다.특히 경기가 조금만 좋아지면 돈을 쏟아붓고,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꼼짝 하지 않아, 결국 경기급등락을 부추기는 기업들의 '소나기식 투자패턴'이 이번에도 재연되는 양상이다.
■ 너도 나도 비상경영
삼성은 금년도 신규투자규모를 당초 책정목표(9조5,000억원)보다는 1조원 이상 감축했다. 대상은 주로 기술개발과 산업연관 효과가 큰 전기ㆍ전자쪽.
삼성전자는 당초 7조3,000억원이던 투자액을 작년(6조4,000억원)보다도 적은 6조1,000억원으로 줄였고, 삼성SDI도 2,000억원을 축소했다. 삼성전기는 작년(7,500억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400억원으로 낮춰잡았다.
LG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신규투자를 각각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했고, 기아자동차는 투자액을 1조1,000억원에서 8,000억원(작년 9,000억원)으로 하향조정했다. 포철도 투자목표액을 2조4,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낮춰 잡았다.
소나기 투자 아무리 금년 경기가 나빠도 마이너스 성장이 아닌 한 경제규모 확대 만큼, 즉 성장률(4~5%)정도의 투자는 이뤄져야 정상. 그러나 1ㆍ4분기 투자는 6.3% 줄었고, 연간으로도 마이너스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경기변동폭 이상으로 너무 빨리 달궈지고 너무 빠르게 얼어붙는 투자패턴을 보여왔으며 이런 과도한 팽창ㆍ축소경영의 반복은 경기불안정성을 더욱 확대 한다"고 지적했다.
환란직후인 1998년 성장률이 마이너스 6.8%로 떨어지자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38.8%로 곤두박질쳤고, 이듬해엔 성장률이 10.9%로 올라가자 투자는 36.3%까치 치솟았다. 성장률이 4%대로 후퇴하는 올해 투자는 다시 마이너스로 수직낙하하는 '롤러코스트' 궤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 문제점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원은 "환란이후 대부분 기업의 경영목표가 매출ㆍ이익 극대화가 아닌 부채축소에 집중돼 투자여력이 있어도 나서질 않고 있다"며 "이런 패턴이 계속되면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후퇴폭 이상의 축소경영으로 민간수요와 구매력이 위축돼 결국 불황터널 자체가 장기화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투자를 줄이는 대신 1ㆍ4분기에만 부채비율을 66%에서 59%로 낮췄고, LG전자도 2ㆍ4분기 외자유치분을 투자 아닌 부채상환에 투입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돈이 생겨도 부가가치 창출에는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기의 불투명성과 대선 등 국내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기업투자는 내년에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재계의 한 고위인사는 "불황기일수록 5~10년 앞을 내다보는 미래형 투자는 오히려 늘려야 한다"며 "정부도 향후 경제운용계획을 빨리 확정해 기업들의 투자 불투명성을 제거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