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장관이라서?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의 행보가 넓다. 장관을 넘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간사 역할을 전면에 내세웠다.26일 대전에서 김 장관이 참석한 출연연구소 (출연연)기관장 간담회가 그렇다. 40여 명의 기관장 대부분이 과기부 아닌 총리실 산하 연구원장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기획예산처와 전날 늦은 밤 기관고유사업비 해제를 합의했다고 '전적'을 과시했다.
출연연들은 올 초부터 경영혁신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임의대로 쓸 몫인 기관고유사업비를 동결 당해 애를 먹고 있었던 터다. 김 장관은 "매주 한번은 대전에 오겠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앞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산을 늘리겠다"며 연구소 입맛에 맞는 구상까지 밝혔다.
출연연의 연구예산 중 기관고유사업비가 약 30%, 연구과제 중심제도(PBS)에 따라 경쟁을 통해 부처로부터 따내는 예산이 약 55%, 민간예산이 약 25%를 차지하는데 PBS비중을 낮추는 대신 안정적인 기관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10년쯤 장기예산으로 편성하면 매년 정부에 연구과제를 심사받는 불편이 없어진다.
김 장관의 구상은 국가목표에 따라 내년 연구개발 예산이 정부 예산의 5%를 달성하면 8,000억 원의 연구비가 늘 터인데 이를 가칭 '기관 장기 사업비'로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화할 제도가 마땅치 않다. 사실 '안정적 지원'과 '경쟁시스템 도입'은 해묵은 딜레마. 애초부터 PBS는 국가의 뒷받침 때문에 출연연이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또 부처 간섭을 배제한다는 명목으로 대부분 출연연이 총리실 산하 연구회로 이관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출연연의 위상을 정립할 주체가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사실 출연연은 특성에 따라, 기초연구가 주된 연구소는 안정적인 국가 연구비가, 산업화가 주된 연구소라면 보다 경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그 잣대를 줄 것인가? 설립 목적대로라면 연구회가 산하 기관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연구 업무와 조직을 조정, 통폐합하고 연구비를 편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능이 없는 현재의 연구회는 옥상옥에 불과하다. 반면 부처들은 여전히 PBS에 의한 연구 발주로 출연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 장관은 "국과위 등을 통해 부처간 의견을 조율하겠다"고 밝혔지만 국과위가 구체적인 예산분배 단계를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흔히 그렇듯 일률적인 기준(몇 % 삭감이라는)만 내놓을 뿐이다.
한 연구원장은 "정치인 장관이라 그런지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 보였다.
정치 장관의 역할이 '정치적 제스처'에 머물지 않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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