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다나카 마키로(田中眞紀子) 신임 외무장관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전후 일본 정치사의 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딸인 그는 아버지를 따라 73년 브레즈네프 구 소련서기장과의 회담, 74년 동남아 순방 등 정상외교을 현장에서 지켜 보았다.또 92년 다나카 전 총리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사전 조정 작업을 맡아 말끔하게 끝낸 경험도 있다. 하지만 외교적 수완은 한번도 검증된 바가 없다.
도리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조차 한수를 접는 독특한 개성이 일본의 대외관계에서 알력을 일을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무성은 물론 고이즈미총리 주변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왔으나 워낙 본인의 희망이 강해 임명됐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반면 외무성 관료 출신으로 강력한 외무장관 후보였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은 "현재 가장 심각한 것은 중일관계"라며 "다나카 장관은 아버지 때부터 중국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어 이를 이용하면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수 있다"고 기대를 표했다.
이런 기대는 다나카 장관의 발언, 그리고 중국측의 태도에서 어느 정도 뒷받침되고 있다. 그는 취임 회견에서 "중국ㆍ대만 문제는 장난삼아 자극해서는 안되며 느긋이 지켜보는 것이 일본의 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27일 새벽에는 리덩후이(李登輝)대만 전총통의 방일에 대해 "이번에는 인도적 견지에서 입국을 인정했지만 중국ㆍ대만 문제는 극히 미묘한 문제인 만큼 중일 평화우호조약이라는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신중한 정책을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26일 그의 외무장관 취임을 환영하며 친근감을 표한 것도 앞으로 중일 관계가 회복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게 한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전망이 가능하다. 다나카 전 총리는 구여권에 깊은 인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교과서 문제 등 실질적인 현안 해결으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강경 발언으로 곤두선 한국측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은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언급은 삼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간의 화해와 긴장 완화"라고 한국 정부에 공감을 표한 것도 눈길을 끈다. 야스쿠니(靖國)신사ㆍ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공식 참배를 생각한 바 없다"ㆍ"종래의 정부 견해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고이즈미 총리의 자세와 대조를 이뤘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와 관련, "연구의 여지는 있어 여러 각도에서 연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이는 대미 관계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동맹관계의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그는 "일본 안보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우선적 무게를 실었다. 다만 미일 관계의 '내밀화' 흐름으로 보아 다나카 장관의 관심은 당분간 이웃나라, 즉 한중 양국에 치중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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