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언론이 비난과 질시의 뭇매를 맞고있는 시절에는 한 마디 격려가 새삼스러울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가 이나마 지탱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힘 덕분 아닌가.한국사회에서 권력의 부패와 전횡을 견제하고, 재벌과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고, 교수나 의사나 변호사같이 힘센 사람들에게 큰소리 칠만한 집단이 언론밖에 더 있는가.
언론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한 이봉주선수에게 늘 우승을 기대하듯, 한국언론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지난 2주일간의 한국일보 기사 중 신문고시에 관한 기사들이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 신문고시를 두고 몇몇 신문들은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날 듯 연일 대서특필했다.
한 쪽은 언론탄압이니 하지 말자고, 다른 쪽은 족벌신문 개혁을 위해 해야 된다며, 서로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만을 집중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신문고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여당과 야당의 주장을 비교적 균형있게 다루었다.
이봉주 선수의 승전보를 전하면서 역대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였던 서윤복, 함기용씨의 대담을 실은 것도 좋았다.
과거는 외면한 채 현재에만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고 영광의 승리를 쟁취한 그들의 회고담은 잠시나마 독자들을 숙연케 했을 것이다.
16일자 기획취재도 돋보였다. 강남ㆍ북 청소년들의 문화수준 격차에 대한 심층기사는 한국사회에서 점점 깊어지는 빈부의 격차를 단면적으로 보여주었다.
냉장고의 성능과 가격 등을 세밀히 비교한 19일자 소비자 정보기사도 매우 유익했다.
그러나 신문의 심층보도 기능을 활용한 기획기사들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고리사채나 실업문제 등 정작 심도있게 파헤쳐야 할 분야의 심층기사는 드물고 대신 주류 물류 정보통신 등 홍보성 기획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신문이 갖고있는 정치ㆍ사회적 영향력을 스스로 축소하고, 만들기 쉬운 기사나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기사로 지면을 채운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치기사도 개선해야할 점이 많다. 14일자에서 이종구 논설위원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다 정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비난하기 앞서 언론의 정치보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신문의 정치면에는 정치나 정책은 없고, 정략과 정쟁과 가십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한국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여대선 주자 4색 처세술'(24일) '여야 구여언론문건 공방'(21일) '임통일 호된 신고식'(19일) '행자위 대우차 격돌'(18일) '이총재 군기잡기'(17일) 등등.
정치인들의 정략적 행보가 아니라 그들의 정책 능력과 활동에 언론보도의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의 정치도 달라지지 않을까.
갈등위주의 뉴스선택은 국제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주 국제면에서는 미주 정상회담 반대시위기사가 많은 지면을 차지했지만, 미주정상회담이 왜 열리는지, 시민단체들은 왜 반대하는 지를 제시하지 않았다.
경제뉴스 역시 뉴스 선택기준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의 경제뉴스는 금융, 증권과 정보산업 뉴스가 대부분이다.
농수산업, 기계공업, 서비스업 등에 대한 기사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농번기인데도 농업관련기사는 25일자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고작이었다.
24일자 경제면에는 롯데그룹의 2세 경영은 4단, 웨딩드레스 패션사진은 2단으로 실렸다. 반면 전세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는 기사는 1단에 불과했다. 독자들에게 어느 기사가 더 중요한 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4ㆍ19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변변한 기사 하나 없이 지나간 것이다.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을 탓하기 앞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역사경시 풍토를 짚어주는 기사가 절실한 시점이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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