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퇴장이었다. 토크 쇼의 새 지평을 열며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이홍렬 쇼' 가 25일 177회로 막을 내렸다.하루 전인 24일 저녁 경기 고양시 한 레스토랑에서 박미선 박철 이성미 심현섭 등 후배 연예인과 김태성 심성민 PD, 작가 김일중씨 등 '이홍렬 쇼' 제작진이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종영 파티를 열었다.
"그 동안 '이홍렬 쇼' 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평소 그답지 않게 짤막한 멘트인데도 연이어 NG를 냈다.
이홍렬은 잠시 목이 메였다.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 쇼로서는 최장수인 5년 2개월 동안 진행한 프로그램의 막을 내리는 이홍렬은 곧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있는 아내가 제일 아쉬워했다. 시청률이 10%대로 낮아지기 시작한 두달 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작진에게 의사를 밝혔다.
방송사는 만류했지만 진행자는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후회 없이 내 이름을 건 토크 쇼를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96년 첫 방송을 한 '이홍렬 쇼' 는 출연자와 진행자의 단순한 대담형식의 토크 쇼를 탈피하고 요리를 하면서 토크 쇼를 벌이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출연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등 새로운 토크 쇼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홍렬 쇼'는 순발력이 뛰어나면서도 꾸밈없는 입심, 자연스럽고 편안한 제스처, 다소 어눌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대사로 진행한 이홍렬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마지막 멘트를 하는 그를 보면서 30%대의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이홍렬 쇼' 100회를 마치고 98년 3월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1년 6개월동안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탈진했다는 생각에 다시 충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룻밤 사이에 인기의 판도가 바뀌는 방송가에서 인기 절정에 떠난다는 것이 부담인줄 알지만, 시청자에게 보다 충실한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고 말했었다. 꾸준히 준비하는 개그맨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귀국해 그는 한국 방송사의 초유의 일로 기록된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 다시 똑 같은 이름의 '이홍렬 쇼' 를 101회나 이어간 것이다.
"다시 시작할 때 큰 부담이었지만 짧지 않은 연예계 생활에서 성실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시청자들이 평가해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유부클럽' 등 다양한 코너를 선보여 시청자의 진솔한 웃음을 끌어냈다.
토크 쇼의 범람 속에 '이홍렬 쇼' 가 의미가 있는 것은 많은 토크쇼가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신변잡기, 심지어 말장난으로 일관할 때 '이홍렬 쇼' 는 다양한 형식과 진솔한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홍렬은 "별 고민없이 쏟아내는 공허한 말 잔치는 피하려고 했다. 토크 쇼는 진행자와 출연자가 쏟아내는 온갖 대화를 어떻게 다양하게 요리하느냐가 문제다.
'참참참' '뿅마치 대결' '이니셜 토크' '유부클럽' 등 다양한 형식을 도입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고 말했다.
방송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이홍렬은 이제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섰다. 5월 1일 첫 방송되는 KBS '퀴즈 정글' 의 진행자로 나선다.
폭탄주 한잔을 호쾌하게 마신 이홍렬은 마지막 말을 던졌다. "퀴즈 프로그램의 진행도 잘 하고 싶고 현재 방송되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의 연기도 잘 해 올 연말에는 시트콤 연기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