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달라진다. 시간이 맞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정확한 시간은 휴대전화가 알려주니까. 그만큼 기능은 기본이 됐고, 시계는 흔해졌다. 귀한 집 자식임을 알려주는 상징도 더 이상 아니다.이런 시대에 시계가 무슨 소용이랴? 시계는 이제 패션 소품의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결혼 때나 귀한 금줄 시계를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몇 개씩 갖추고 적절하게 바꿔 차는 것이다. 시계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제품을 문의할 정도로 시계 마니아층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패션 명품 시계의 부상이다. 에르메스, 샤넬,구찌, 아르마니, 베르사체, 크리스챤 디올, 펜디 등 한번씩 들어 봄 직한 패션 브랜드들은 시계시장에서도 인기다. 나온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워낙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반응이 좋다. 재래시장에선 이런 제품의 카피가 나돈 지 오래다.
현대백화점 잡화팀의 박영하 차장은 "최근 기능성보다 패션성을 중심으로 한 시계가 유행 상승 사이클을 타면서 산뜻한 디자인의 명품 브랜드들이 인기"라고 말한다.
예물시계조차 디자인이 도시적인(그리고 비싼!) 까르띠에를 최고로 친다. 물론 여전히 금줄에, 보석이 박힌 고전적인 예물시계 시장이 일정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패션 시계가 예물 시계군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 박 차장의 분석이다.
남성들 사이에선 스포츠 시계가 패셔너블한 소품으로 인기 수위다. 2,000㎙ 방수, 수공제작 등 고기능성을 내세운 IWC를 비롯해 부시 미 대통령이 차고 다닌다는 타이맥스, 섹터, 타임포스 등 브랜드들이 티타늄 소재와 여러 개의 문자판, 야광, 백라이트 등 기능을 자랑한다. 사실상 갖가지 기능을 활용하기는 벅차다. 캐주얼한 디자인이 아니라면 요즘 소비자들을 매혹하진 못한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또 레포츠활동 때 더 없이 어울리는 패션 소품들이다. 게스, 캘빈 클라인 등도 이러한 스포츠형 디자인을 포함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고전적인 시계 브랜드들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100여 년 전통을 가진, 주로 스위스산의 시계 브랜드들이다. 스와치그룹은 오메가, 라도, 론진 등 그동안 오리엔트, 삼성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판매하던 고가 브랜드들을 지난 해부터 직영판매로 전환하며 국내 시장에 진입 중이다. 콩코드, 니나 리찌, 알바 스푼, 세이코 등도 모두 지난 해부터 올 초 사이 국내 수입되기 시작했다. IMF로 국내 시계업체들이 무너져 버린 데다가 해외 브랜드에 한창 관심이 오른 한국 시장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적 시계 업체들마저 감각적인 패션 시계를 내놓으면서 변신하고 있다. 전세계 시계시장의 25%의 차지하는 스와치그룹이 1980년대 '스와치'를 내놓으며 일본 시계를 다시 따라잡은 것이 그러한 예다. 스와치의 봄, 여름 제품은 비키니 수영복에 부착된 시계, 가방 끈에 달린 시계, 손목에 둘둘 말아 묶는 아크릴줄 시계 등 재기넘치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10대 후반~20대의 젊은 층, 패션리더층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 타이맥스가 간단한 문자메시지가 뜨는 열쇠고리형 시계 '그립 클립'을 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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