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간으로 데려다 주오'미국의 한 신문은 '한니발'(감독 리틀리 스콧)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은 것은 간을 먹는 장면 뿐이라는 것이다. '한니발'이 보다 더욱 엽기 행각에 공을 들였다는 말이다.
전편인 '양들의 침묵'에서 보인 닥터 렉터(앤서니 홉킨스)의 캐릭터는 어떤 영화에서 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상대방의 살점을 뜯어 먹지만 말투는 우아하고 태도에는 기품이 있다. 영국식 어법을 구사하는 매우 지적인, 그리고 그만큼 돌발적인 살인마처럼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양들의 침묵'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품격 높은 살인마와 어린 여형사 클라리스의 '애매한 교감' 에 있다.
'한니발'은 '엽기' 살인자 렉터의 캐릭터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단테의 시를 원어로 낭송하는 고문서 학자로 피렌체에 은거중이다.
쫓는 적은 더 많아졌다. FBI 요원 클라리스(줄리앤 무어)의 추격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의 '식인행각' 의 희생자였던 갑부 메이슨은 흉한 몰골로 살아 남아 각국에서 렉터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중이다.
사람이 얼굴을 벗겨내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게리 올드먼이 열연한 메이슨 버거를 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여기에 포상금 300만달러 때문에 홀로 '렉터 사냥'에 나선 페렌체 경찰 파찌(지안카를로 지아니)까지.
전반부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다" 라는 대사는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도 매우 유효하다. 렉터와 스털링, 렉터와 희생자들의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심리적 충돌이 속편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뇌의 전두엽을 기술적으로 잘라내면 사람은 죽지 않을 뿐 더러 버터에 구운 자신의 뇌를 미식가처럼 즐길 수도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려 준다.
친구도, 적도 아닌 렉터와 클라리스의 관계는 '연정'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과잉진압으로 정직 위기에 처한 클라스스를 위해 렉터가 나타나고, 마지막엔 클라리스를 위해 엄청난 '결단'을 한다.
전편에 경찰학교의 학생이었던 지적이고 섬세한 신경의 조디 포스터의 자리를 물려 받은 줄리언 무어는 10년 경력의 베테랑 요원으로 생각하기 전 총을 먼저 뽑는 타입이다.
목마를 타고 가면서 클라리스의 머리칼을 슬쩍 만지는 렉터의 능란함은 충분히 스릴있지만, 그것을 감지 못하는 클라리스의 둔감함은 "조디 포스터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글래디에이터'로 흥행감독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리들리 스콧은 조너선 드미보다 감각은 떨어질지 몰라도 상업적 접근은 한 수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내장이 튀어 나온 채 교수형 당한 파찌나 식인돼지가 사람의 머리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 부상당한 클라리스를 후송하는 장면이 한껏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토마스 해리스 원작, 한스 짐머의 음악,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 빚어낸 영화는 '양들의 침묵'과는 질감이 다른 살인영화이다. 문제는 '그 질감' 에 국내 관객들이 얼마나 열광하는가 이다.
미국에서는 2월초에 개봉, 현재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수입심의에서 문제가 됐던 뇌를 자르고, 내장이 튀어 나온 부분 등은 검게 처리했다. 28일 개봉.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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