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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이대한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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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이대한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

입력
2001.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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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이 우거진 나무들 속에 숨지 못하도록 수풀에 뿌려졌던 미국산 고엽제는 밀림을 까맣게 말리려는 거대한 음모였다.무지했던 병사들은 그러나 가루 고엽제를 철모에 퍼담아 뭉텅뭉텅 풀숲에 뿌려대며 제초작업의 수고를 덜어주는 미국에 감사했다.

30일로 베트남전이 끝난지 26주년이 된다. 지금껏 베트남전의 상처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이대환(43)의 새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실천문학사 발행)에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베트남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로우 불릿(Slow Bulletㆍ느린 총알)' 은 '천천히 그러나 마침내 심장을 관통하는 살인'이라는 의미로 고엽제 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북 포항의 호미곶에 살고 있는 김익수는 뻐꾸기 우는 계절이 오면 피를 토하며 병원에 실려가는 고통을 10년째 치러온 고엽제 환자다.

통조림공장에 다니는 아내가 가장노릇을 감당해야 하고 큰아들 영호는 하반신 마비, 둘째 아들 영섭은 사타구니 습진이라는 고엽제 후유증을 물려받았다.

고엽제 문제를 취재하러 온 지역방송국 TV카메라 앞에서 아내는 "죽음도 무섭다고 비케가는 밥벌레! 우리는 너무 억울하니더!"라고 부르짖는다.

기도원에서 돌아온 큰아들은 가슴 깊은 곳에 분노를 쌓아놓은 채 아버지를 향해 이죽거리기만 하고, 습진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절연당한 둘째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파국을 더욱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추억이다. 남편을 "밥벌레"라며 울먹이는 아내는 청보리밭 무덤가의 첫날밤과 '고소하고 반지르르하게 살았던' 결혼초 몇 년을 기억하고, 항문에 호스를 꽂고 관장을 하는 큰 아들은 민중운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노동자 시절을 기억한다.

아무리 먹어도 바싹바싹 마르기만 하고 해마다 시뻘건 핏덩이를 토해내며 까무러치는 고엽제 환자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그보다도 섬뜩한 것은 고엽제의 '단계별 진화'를 체험했던 참전용사에 대한 치밀한 묘사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때문에 속옷차림으로 고엽제를 옮겨 담았던 주인공은 "등줄기를 타고 인두처럼 오르내리는 통증"과 "목구멍을 면도날처럼 찢는 고통"에 시달렸다. 양민에게 화염방사기를 당겨 몸에 불이 붙은 베트남 소년들이 고꾸라지는 장면도 어른거린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가 겪는 현재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전쟁의 기억이 더 쓰라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환씨는 고엽제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한 김길웅씨의 증언을 듣고 베트남을 답사, 당시의 전투상황과 고엽제 살포작업, 양민 학살행위 등 전쟁 체험을 수집해 아픈 현실로 재현해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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