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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일본 / (上) 커지는 보수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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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일본 / (上) 커지는 보수물결

입력
2001.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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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성 장관이 24일 일본 자민당 총재, 26일 총리에 오른다.국내에서는 개혁파로, 대외적으로는 강경 보수파로 여겨져 온 그가 일본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주목된다. / 편집자주

26일 일본 총리에 오르는 고이즈미 전 장관은 자민당내에서는 오랫동안 개혁파로 분류돼 왔다. 우체국의 우편ㆍ금융 업무를 전면 민영화하자는 지론에서 보듯 대표적인 구조개혁론자이다.

반면 역사ㆍ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늘 강경 보수파에 속했다.

개인적 성향은 물론 후쿠다 다케오(福田武夫)ㆍ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ㆍ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ㆍ모리 요시로(森喜朗)로 이어진 파벌의 전통도 그렇다.

그가 인기몰이를 통해 23일 끝난 예비선거에서 압승, 자민당 총재ㆍ총리에 오르게 된 데 대한 일본 국내의 평가는 높다.

일반 국민, 그리고 당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총리를 정해 온 자민당 파벌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전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일본 사회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뚜렷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이즈미의 일본은 그래서 주변국의 걱정을 낳고 있다. .

물론 일본 보수 우경화에 대한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패전 직후 일었던 진보ㆍ개혁 물결이 냉전의 파고에 덮인 뒤 보수세력의 결집은 꾸준했고 그 정치적 표현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었다.

그러나 72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 온 하시모토(橋本)파는 중도 보수 노선을 통해 우경화 흐름을 어느정도 제약해 왔다.

이번 총재선거 패배로 하시모토파의 구심력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일본 파벌정치의 특징은 반복적 사전 이해 조정 과정이었다. 이 같은 여과 기능이 상실될 경우 자민당의 우경화 흐름에는 고삐가 풀린다.

앞뒤를 돌아 보지 않고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고이즈미 전 장관의 행동 양식은 우려를 더한다. 그는 얼마 전 주일대사관 고위관계자와의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나는 김치를 아주 싫어한다"고 밝혔다.

스스로도 미안했던지 "쓰케모노(일본식 김치)도 다 싫어한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그의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낸 일화이다.

그는 '선명 경쟁'을 주도해 선거에 승리했다.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참배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해 다른 후보들이 뒤따르게 했다.

역사 교과서에 대한 한중 양국의 반발은 '헛소리'로 치부했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개정이나 유권 해석 변경에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단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물러섬이 없었던 그의 경력으로 보아 '공약(空約)'에 머물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민당 밖의 흐름도 궤를 같이한다. '네오 나치즘'을 연상시키는 외국인 비하ㆍ기피 발언을 거듭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지사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이시하라 신당'이 발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욱이 이런 선동은 현상 타파를 갈구하는 대중의 정서에 먹혀들고 있다.

일본계 브라질인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군마(群馬)현 오이즈미(大泉) 마을에서는 얼마전 '이대로 가면 브라질의 식민지가 된다'는 내용의 홈페이지까지 등장했다.

고이즈미 전 장관의 약속 이행은 이런 저변의 흐름에 불을 붙이는 것과 다름없다.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로 그의 정치 기반은 강해졌지만 그는 아직 정치 거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더욱 전망을 어둡게 한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85년 최초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한 뒤 한중 양국의 거센 반발이 일자 공식참배를 포기했다. 당내에서 역반발이 있었지만 나카소네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이를 억누를 수 있었다. 고이즈미 전 장관에게는 그런 제어력이 없다.

자민당내 어떤 정치인도 마찬가지이다. 불을 붙인 뒤 끌 사람이 없다는 점이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더욱 심각하게 한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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