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경제학자 가운데 최고 거두가 폴 사무엘슨 MIT대 교수라고 한다면, 이에 필적하는 경영학의 거두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교수로 꼽힌다.전공 서적류의 도서를 통틀어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유명한 사무엘슨의 '경제학'이고, 그 다음 베스트셀러가 포터의 '국가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 비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포터교수가 최근 일본경제의 성공과 좌절 원인을 실증적 연구조사를 통해 분석한 새로운 저서(일본은 경쟁할 수 있나- Can Japan Compete?)를 출간, 주목을 받고 있다.
90년 초부터 10년간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이 책에서 포터교수는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함몰된 채 퇴보를 거듭하는 배경을 '경쟁의 결핍'에서 찾았고, 그 책임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해온 일본 정부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제까지 일본경제 신화의 주역이라고 칭송받던 관료자본주의가 기실은 경제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지적이다.
80년대말 까지만 해도 세계를 거의 삼킬 듯한 기세로 상승하던 일본경제가 어느 순간 불황의 덫에 걸려 긴 신음만 내고 있는 것은 세계적 '수수께끼'이다.
한 때 'Japan as No.1'이라며 경외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던 미국이 이제는 반조롱으로 일본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과거 일본이 모두가 뒤따르고 싶어 하는 '희망의 모델'이었다면, 지금의 일본은 모두가 피해가려는 '악몽'이다.
그런데 한국경제가 그 악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는 현재의 과도한 저금리 체제가 구조조정 지연과 소비ㆍ투자 위축을 불러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본래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면서 경기부양과 투자촉진으로 이어지는 게 정상이다.
미국경제가 침체조짐을 보이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잇따라 금리인하 조치를 취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투자로는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소비만 위축시켜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불길하게도 최근 우리 경제 역시 실질적인 예금이자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지연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이자소득생활자의 소득감소 등으로 돈이 돌지 않아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메이드인 저팬'이 무섭게 미국시장을 휩쓸던 80년대 미국은 기업파산과 대량해고의 칼바람 속에 와신상담의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후 10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며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다시 우뚝 섰다. 반면 일본은 90년이후 10년이상을 장기불황의 고통을 겪었지만 재기의 기미는 아직 없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기약하기 어렵다. 일본이 미국과 달랐던 점은 상처와 고통이 없는 수술(구조조정)을 하려다 오히려 병만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일본형 인가, 미국형 인가. 두 갈림길 사이에는 또 다른 길이 없다.
배정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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