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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렇게] (17)아마축구에 환호와 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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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렇게] (17)아마축구에 환호와 갈채를

입력
200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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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9일 효창운동장을 찾았다. 대통령배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숭배하던 이회택이 뮌헨올림픽 출전 실패의 희생양이 되어 그라운드를 떠났다가 바로 이 대회에서 무지개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재기했었다.운동장에 도착하니 마침 준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중수는 700명이나 될까.

효창운동장의 관중 구성은 단순하다. 항상 50여명 정도 되는 할아버지들이 출근하여 "야, 똑바로 못해?" 하며 호령을 한다. 그 다음엔 아줌마 부대다. 전원 축구 선수의 엄마들이다. 이들은 "끝까지 따라붙어!"에서 "그게 어떻게 오프사이드냐?"에 이르기까지 정말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다. 그래도 효창운동장을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은 대학생들이다. 꽃샘 추위가 몰아쳐도 웃통을 벗고 열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평일에 '땡땡이' 치고 오는 직장인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특별히 응원하는 팀도 없이 누구든지 잘 하면 응원하고, 어느 쪽이든 골이 터지면 환호한다.

효창운동장에서는 우리 축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도 두 경기에 두 명이 퇴장 당할 만큼 경기가 거칠었다. 젊은 선수들이 콘크리트 바닥 같은 그라운드에 나뒹굴면 아줌마부대는 절규한다. 심판은 여전히 페널티킥 주는 데 인색하고 관중은 "이래 가지고 월드컵 하겠어?" 하며 고함을 지른다. 아마추어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기본적인 트래핑을 실수할 때면 '천연잔디구장 확보, 유소년축구 육성'이라는 '주기도문(主祈禱文)'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모두가 가슴을 열고 열광한다.

경기가 끝나고 이긴 선수들이 응원단 앞에서 승리를 만끽하는 동안 진 선수들은 고개를 떨구고 라커룸으로 향한다. 애인이 소리쳐 불러도 애써 외면하며 입술을 깨문다.

선수들이 떠나고 관중도 떠나고 나도 황량한 바람에 쓰레기만 흩날리는 운동장을 뒤로 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연구실에서 수학문제를 풀다가 효창운동장을 떠올린다. 1년 뒤면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데 효창운동장에서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그 대신 거기서는 '성골 축구팬'이 된 오만함을 맛볼 수 있다. 5월이 되어 대학연맹전이 시작되면 다시 한 번 가 봐야지.

/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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