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의 절반 이상이 외자(外資) 지배 체제이고, 선도은행인 국민ㆍ주택 합병은행마저 외국인이 최대주주가 됩니다.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을 때 단기수익을 지상목표로 하는 외국인에게 협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한 시중은행장)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소유가 확대되면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치금융 해소, 선진금융기법 전수 등 외자 유치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국가경제의 심장역할을 하는 은행을 줄줄이 외국인에게 내주는 것은 국가 전략과 경제 정책의 포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국민ㆍ주택은행 합병시 국민은행 대주주인 골드만삭스가 보유 중인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지분 9.64%로 단일 최대주주가 되며 두 은행 외국인 투자 지분을 모두 합하면 60%를 넘게 된다.
제일ㆍ외환ㆍ한미ㆍ하나은행 등은 이미 1대 주주가 외국인으로 돼 있다. 여기에 서울은행 해외 매각이 성사되면 9개 시중은행 중 6개가 외국인 대주주 손에 넘어가는 것이다.
외국인 주주의 목표는 단 하나, 수익의 극대화이다. 수익성 추구는 주주의 당연한 권리이자 바람직한 경영 활동이다.
그러나 제조업체와 달리 은행은 경제정책의 조정자이자 위기관리자라는 공익적 기능을 해야 할 사명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劉容周) 선임연구원은 "외국인은 정부 정책이 자기 이익에 반할 경우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외자는) 단기 수익이 나면 언제든지 지분을 되팔고 철수해 시장을 공동화(空洞化)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시장 규칙과 가격(금리 등)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도은행마저 외국인 손에 넘어갈 경우 정부의 시장 통제수단은 사실상 마비되게 된다. 선도은행이 정부 정책을 외면하면 후발은행들이 동참할 리 없다.
외국인 소유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축소하고 소매금융에 치중하는 것도 문제다. 국제 잣대에 비춰 볼 때 대부분 투자부적격인 국내 기업들에 여신을 꺼리는 것은 이미 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서 일반화한 현상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 왜곡과 구조조정 지연 등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은행이 외국인 관리하에 있는 것을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인천대 이찬근(李贊根) 교수는 "외국의 경우 대부분 대형은행의 국적을 중시한다"며 "개방경제를 표방한 싱가포르도 1999년 5월까지 외국인 은행지분 소유한도를 40%로 묶어 둔 덕분에 4대 은행의 국적을 지켰고 경제안정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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