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가 이 나라 병의 원인인가? 툭하면 개인주의의 만연으로 사회의 질서가 붕괴되고 소외감이 심화하고 있다고들 말한다.이에 대한 처방으로 공동체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유교적 공동체가 바람직하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논어'특강도 이런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분석과 처방이 옳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는 옳다. 문제는 개념 구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적들'에서 두 개의 범주를 구별한다. 하나는 이기적 이타적 범주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주의적 집단주의 범주이다.
범주가 다르다는 것은 색과 형태가 서로 다른 범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빨간 색과 삼각형이 결합 가능하고 또한 빨간 색과 사각형이 결합 가능하다.
색과 형태가 서로 다른 범주이듯이 이기적 이타적 범주와 개인주의적 집단주의 범주는 서로 다른 범주이다. 따라서 각각의 결합이 가능하다.
즉 (1)이기적 개인주의 (2)이기적 집단주의 (3)이타적 개인주의 (4)이타적 집단주의 결합이 그것이다. 4개의 선택지 중 나는 (3)이타적 개인주의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집단의 행복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한다고 여기고 이기주의보다 이타주의가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아마도 (1)과 (2)일 것이다. 이기적 개인주의는 집단보다 개인이 우선하며 남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유형의 문제는 개인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주의에 있다. 남보다 우선 내 이익을 챙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사기꾼의 사회로 만들고 있다.
공교육은 무시된다. 왜냐하면 우선 내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이지 결코 백년대계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적 집단주의는 우리가 흔히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각종 노조는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아파트 주민들도 아파트 가격 떨어진다고 소각장이나 납골당 설립을 결사 반대한다. 목소리가 큰 집단이 결국은 이익을 챙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유형은 이타적 집단주의인데 집단의 이익을 개인보다 우선하면서도 남을 위하는 사례로 우리는 가톨릭 같은 종교 집단을 들 수 있다.
민주화의 실체는 무엇인가? 민주화란 결국 이타적 개인주의로 가는 것이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고 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지혜를 체득해 가는 과정이 민주화이다.
그래서 고문과 같이 국가의 안전이란 명목으로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방향을 잘못 잡았다.
최악의 경우인 이기적 집단주의가 사회의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집단의 이익을 최대한 쟁취하지 못하면 무능하거나 어리석다고 평가받는다.
너도 나도 단체를 만든다. 그 단체는 물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익 집단의 전쟁터에 동원된 허구의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한 사회가 방향을 상실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경제건설과 민주화라는 명제로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는 지금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막연한 남북통일이나 국제화는 우리에게 실제로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이제는 이념적 지표를 세워야 할 때이다.
정부는 국가의 편의나 권위보다 국민 개인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야 하고 시민들도 이기적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주의는 옳다. 문제는 이타적 개인주의로 가는 과정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탁석산ㆍ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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