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년 4월21일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피에르 아벨라르가 죽었다. 향년 63세.아벨라르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논쟁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지만, 오늘날 일반인들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은 주로 그와 엘로이즈 사이의 사랑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서 만난 것은 아벨라르가 명성의 절정에 있던 1118년이다. 그 때 여자는 열여덟살이 채 못되었고, 남자는 마흔이 다 되어갔다. 여자도 남자도 그 때까지는 동정이었다.
남자는 한눈에 여자에게 반했고, 여자를 유혹했고, 결국 아이를 배게 했고, 그녀를 가족과 떼어놓기 위해서 유괴했으며, 그녀와 결혼했다. 여자의 삼촌은 가족의 명예를 위해 자객을 고용해 아벨라르에게 잔혹하게 복수했다. 그 복수란, 아벨라르의 국부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이 '사기'의 집필에 자신의 좌절을 묻었듯, 아벨라르는 자신의 수치심과 절망과 뉘우침을 수도복 속에 묻어버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신앙 생활 속에서 쉼 없이 읽고 쓰고 논쟁했다. 그의 뜻에 따라 엘로이즈도 수녀가 되었다.
십여년이 지난 뒤에 그들은 서로의 소식을 알게 돼 편지로 사랑을 주고 받지만, 그 사랑은 종교적 사랑에 가까웠고 그들은 결국 생전에 재회하지 못했다.
600년이 지난 뒤 루소는 이들의 사랑에서 힌트를 얻어 '쥘리 또는 새 엘로이즈'라는 소설을 썼다. 루소가 이 소설에서 그린 것은 12세기의 사랑이 아니라 18세기의 사랑이다.
그 소설은 마담 두드토라는 여자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자 그 한풀이로 쓴 것이다. 루소는 소설의 주인공 쥘리 안에서, 그러니까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 닿을 수 없었던 두드토 부인에게서, 엘로이즈의 현숙과 지혜를 보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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