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두려워 하는 자는 붉은 깃발 아래에 서고, 아내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에 서라” 고 장군이 십만 병사에게 명령했다.한 병사만 푸른 기 아래에 섰다. 장군에게 돌아 온 답, “제 처가 항상 경계하여 말하기를 남자 셋이 모이면 반드시 여색을 논하게 되니, 세 남자라도 모인 곳에 당신은 일체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십만의 남자가 모여 있는 곳에 어찌 가겠느냐는 첨언과 함께. 결국 그 병사는 아내를 더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17세기초 광해군 때, 조선 민중 사이에는 그 같은 농이 오갔다. 한국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譚)’ 중 ‘처첩(妻妾)’편에 기록된 내용이다.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의‘어우야담’이 처음으로 완역됐다. 이번에 먼저 선뵈는 1권에는 모두 522화 중 인륜편(11항목)과 종교편(10항목)이 옮겨져 있다.
효열(孝烈) 충의 붕우(朋友) 등 유교적 윤리에 부합되는 내용은 물론, 창기 등이 있는 술자리에서나 오갔을 이야기까지 수록돼 있다.
문학사적으로는 필기잡록류로 총칭되는 선대의 전통을 잇고, 이후 야담 문학의 성행을 예고한 책이다. 어우당이 세상을 뜨기 1년전 정치적 위기를 맞아 죽음을 예감하며 썼던 책
책이다. 당쟁과 임진왜란으로 뜻을 펼칠 수 없던 선비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서한집이었던 셈이다.
그는 팔도 어사를 하며 자연스레 듣게 된 인간 군상의 가식 없는 모습은 물론, 주인과 노비의 갈등 대목에서는 신분 질서가 붕괴돼 가는 과정까지 극적으로 형상화했다
^학예편(12항목), 사회편(20항목), 만물편(6항목) 등 나머지 이야기도 곧 발행될 예정이다. 어우당은 이 책을 완성하고 인조반정에 연루돼 아들과 함께 사형당했다.
그의 호 중 ‘어우’는 ‘장자’천지편에 나오는 말로, ‘쓸데 없는 소리로 뭍사람을 현혹시킨다’는 뜻.
^이 책은 ‘청구패설본’ ‘일사본’ ‘낙선재본’ 등 20가지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비교 작업의 결과이다. 매끄러운 번역문에, 텍스트 별 비교표, 원문 영인 등이 신빙성을 더한다.
박명희 이화여대 교수 등이 벌인 강독과 번역 작업에, 한학자 이충구 전통문화연구회 연구위원의 감수가 따랐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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