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자금운용을 가계대출에만 집중하는 '제살깎기 경쟁' 에 몰두하면서 수익성 악화를 자초하고 있다. 반면 기업 대출조건 강화로 신규 설비투자를 포기하는 기업들이 속출,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출시장은 축소 경쟁은 심화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반기(지난해 10월~올 3월)의 은행권 신규대출금 가운데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4.8%로 이전 반기(지난해 4~9월)의 45.4%에 비해 19.4%나 증가했다. 반면 대기업 부문은 18.5%에서 17.1%, 중소기업 부문은 36.1%에서 18.1%로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달의 경우 은행권의 기업ㆍ가계 대출금 2조6,185억원 가운데 기업대출은 1,253억원에 그친 반면 가계부문은 2조4,932억원으로 95% 이상을 차지하는 등 가계대출 비중이 폭증하는 추세다.
반면 경기 침체로 최근 반기의 기업ㆍ가계 대출금은 총액은 17조1,318억원으로 전반기의 31조8,945억원에 비해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금리장사를 할 시장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주력 상품까지 한 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국내은행들은 물론 씨티은행, HSBC 등 외국계은행들이 저마다 가계대출 금리를 대폭 떨어뜨리며 시장 확장 전략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올 1월 2.57%포인트, 2월 2.91%포인트 등 상승할 조짐을 보이던 은행 예대마진(예금ㆍ대출 이자 차이)이 다시 떨어져 경영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 기업들 빈익빈 부익부
정희전 한국은행 통화운영팀장은 "은행들은 예금의 30% 가량을 유가증권, 채권투자 등에, 70% 가량을 가계ㆍ기업 대출에 활용하고 있다"며 "그러나 최근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조짐을 보이자 비교적 안전한 가계 대출에 집중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기업 대출이 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불투명한 경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용길 조흥은행 자금운용실장은 "은행들이 환란과 1ㆍ2차 구조조정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기업들에 대한 대출조건 규정을 선진국 기준으로 바꿨다"며 "이 같은 내부규정에 따라 우량기업에게는 거의 무한대의 대출기회를 주는 반면 부실우려가 있는 기업에게는 대출을 거의 하지않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성장성 있는 기업들도 설비투자를 기피하는 경우가 늘면서 향후 세계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기업대출 기피는 결국 우리 경제의 퇴보를 초래할 것"이라며 "은행들이 가계대출 편중 현상을 바꿀 계기를 찾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