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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나폴레옹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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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나폴레옹 3세

입력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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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4월20일, 뒷날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을 거쳐 제2제정의 황제(나폴레옹3세)가 될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1873년 몰(歿). 그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1세)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였다.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백부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고 제1제정이 붕괴한 뒤 젊은 시절을 추방과 옥살이로 보내다가, 1848년 2월 혁명 뒤 그 해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3년 뒤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하고 공화파의 세력을 꺾은 뒤, 다시 그 이듬해 황제가 되어 제2제정을 선포했다. 그는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고, 그 이듬해 제정이 붕괴되자 영국으로 망명해 그 곳에서 죽었다.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성(姓) 보나파르트에서 유래한 보나파르티슴이라는 말은 이들 두 황제의 정치 체제나 정책을 의미한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는 본래 보나파르트가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뜻했다. 학문적 수준에서 이 체제를 처음 분석한 사람은 마르크스다.

그에 따르면 보나파르티슴이란 보수적 농민과 도시의 중산계급을 버팀대로 삼아,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 사이의 조정자로 위장한 절대주의적 독재정치 체제다.

나폴레옹 1세와 3세를 배출한 보나파르트가의 전성기는 나폴레옹1세가 제위에 있던 19세기 초일 것이다. 그 당시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는 스페인의 왕이었고, 동생 루이는 네덜란드 왕, 또다른 동생 제롬은 베스트팔렌 왕이었다.

형제들만이 아니라 누이동생들도 한 자리씩 차지했다. 엘리자는 토스카나 대공비였고, 폴린은 이탈리아의 보르게제 공비였으며, 카롤린은 나폴레옹의 부장(部將) 뮐러와 결혼해 나폴리 왕비가 되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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