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도시 가운데 보스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50~60년대 보스턴 백이라는 여행용 가방이 크게 유행해 그곳의 역사와 문물은 몰라도 이름만은 다 알았다.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입상한 한국선수가 많아 우리에게 더욱 친밀한 이름이 되었다.
광복 직후인 1947년 서윤복 선수가 세계 신기록(2시간25분39초)으로 우승함으로써 신생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드날린 곳이기도 하다.
■3년 뒤인 50년 대회에서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세 선수가 1, 2, 3위를 휩쓴 것이다.
57년 대회에서는 임종우(3위) 한승철(5위) 선수, 93년에는 김재룡(2위) 선수, 94년에는 황영조(4위) 선수의 입상에 이어 이봉주 선수가 이번에 세 번째 우승을 따냈다.
보스턴 시민들에게도 한국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현지 언론도 케냐의 11연승을 저지했고, 51년 만에 우승을 되찾은 한국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저는 실력이 부족해서.나도 모르게 뛰었으며, 1등은 예상 밖입니다.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50년 대회 우승자 함기용 씨의 소감이다.
선발대회에서 3위를 해 간신히 출전권을 따낸 것을 의식한 말이지만, 얼마나 겸손하고 순박한가. 미국 각지를 돌며 인터뷰를 할 때 그는 새로 독립한 우리나라에 원조물자를 많이 보내주기 바란다는 말을 빼지 않았다.
출전경비가 부족해 여기 저기서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나라살림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 돌아가는 대로 아버지 산소로 달려가 금메달을 바치겠다"는 이봉주 선수의 우승소감에는 나라걱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그는 이번에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국적 전자회사 로고를 자랑하듯 가슴을 내밀고 뛰었다.
또 상금 출전수당 등 대회조직위원회에서 받는 돈에, 소속사와 연맹의 포상금 성금 등을 합쳐 4억원 돈방석에 올라앉게 된다. 같은 대회 우승자지만 50년 세월은 선수의 기분과 처우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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