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파문, 시드니올림픽에서의 좌절, 부친의 사망..' '한국마라톤의 희망' 이봉주(30ㆍ삼성전자)가 반세기만에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하며 골인점을 들어서는 순간, 그의 눈가에는 지난날의 좌절과 시련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1999년 코오롱파문(팀과의 불화로 이탈 후 사표)을 겪고 난 뒤 지난해 2월 도쿄마라톤에서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우고 트랙에 눈물을 뿌리며 감격을 맛보았던 것도 잠시.
액운은 한꺼번에 닥치는 것일까. 그에게는 시련이 계속됐다.
"이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우승을 자신하며 출전했던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에서 그는 레이스 도중 충돌로 넘어지면서 24위로 추락, '이봉주는 끝났다'는 세간의 평가까지 낳았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정신적 스승'이었던 아버지 이해구씨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극심한 심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의 레이스는 멈추지 않았다. 재기의 집념을 불태우며 숨쉬기도 힘든 미국 앨버커키 해발 3,000㎙ 산악지대에서 5주간의 지옥훈련을 견뎌냈고, 캠프가 차려진 충남 보령에서의 맹훈련도 계속됐다.
이봉주는 골인점에 들어선 후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는 생각에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봉주가 짝발에 짝눈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이 때문에 무수한 부상과 슬럼프를 겪으면서도 오기와 끈기로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로 다시 우뚝 서 더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육상계 관계자는 "그는 1947년 김구(金九)선생이 보스턴마라톤을 우승한 서윤복(徐潤福)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ㆍ발로 천하를 제패)'를 써보이며 격려했던 보스턴에서 더 큰 족적을 남기며 '불멸의 마라토너'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이봉주 어머니 "큰일해내 기쁘다"
○.이봉주가 17일 새벽 미국보스턴마라톤에서 1위로 들어오는 순간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 고향집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봉주의 누나 부부, 조카등과 함께 밤 세워 TV중계를 지켜 본 어머니 공옥희(孔玉姬ㆍ66)씨는 "시드니 올림픽 패배와 아버지의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큰 일을 해내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공씨는 "봉주가 미국으로 가기 전 우승을 약속했었다"며 "우승 직후 전화를 걸어 와 이번 일요일(22일) 아버지의 49재에 맞춰 귀국해 우승메달을 영전에 올리겠다고 말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아침 TV뉴스를 통해 뒤늦게 이봉주의 쾌거를 전해 들은 주민들은 날이 밝자마자 그의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에 바빴다. 또 천안시 주요도로에는 우승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고, 시 관계자 등이 카퍼레이드를 준비하는 등 축제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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