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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예수의 웃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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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예수의 웃는 얼굴

입력
200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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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자들이 '과학적'인 작업을 통해 복원했다는 '예수의 얼굴' 모습이 최근 우리 신문들에도 보도됐다. BBC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하느님의 아들'에 처음 공개된 것이라고 한다.이 얼굴의 특징은 우선 '백인이 아니다'라는 점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온 '유럽인 예수 상'과 딴판이다. 피부는 짙은 갈색이고 코는 뭉툭하며 부릅뜬 두눈에 머리털은 짧은 고수머리다. 한마디로 사막의 야인(野人)같은 인상이어서 푸른 눈에 창백한 피부, 깡마른 체구,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지적(知的)이고 우수(憂愁)에 가득찬 보편적인 예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실제로 예수가 어떻게 생겼던가를 말해주는 기록은 공관복음서 어디에도 없다. 눈물을 흘리는 대목은 몇 군데 있으나 '웃었다'는 묘사 조차 전혀 없을 정도다. 따라서 이 세상에 무수한 예수 상은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근엄한' 이미지들 뿐이다.

BBC가 '이웃 아저씨' 같은 유색(有色) 예수 상을 그려내기 1년 전에, 우리나라의 한 여성 화가는 2000년 대희년을 기념하여 '파안대소하는 예수'를 그렸다. 전문적인 식견이나 들은 바가 없어 '웃는 예수 얼굴'이 어디에 또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 희한한 예수 상에 담겨있는 지극한 기쁨과 평화는 보는 이들을 더불어 미소짓게 한다.

마침 엊그제 부활절은 예수의 죽음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교 핵심적 명절로, 전세계 20억 인구가 그 뜻을 동시에 경축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첫 부활절은 전국 교회에서 예외없이 성대하게, 그리고 '살아서 오는' 그리스도 예수를 맞이하는 기쁨과 환호속에 일제히 기념되었다.

그러나 올해 이 땅에 부활한 예수가 지난 해 한 신심두터운 여성화가가 그려낸 얼굴처럼 활짝 웃을 수 있었겠는지, 그것만은 부정적이다. 아마도 그분은 인천의 한 교회밖에 내걸린 '정권 퇴진' 구호에 상심했을 것이고, "개패듯" 얻어맞았다는 노동자들 모습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둡고 어지럽다. 그런 까닭은 전적으로, 나라가 백성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언제 쩍 3김'의 수중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수렁을 헤매고, 개혁은 실종된 채 거듭된 실정이 고통을 가중시키며,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 밀려나는 노동자ㆍ서민들의 고통을 흡수하거나 끌어안을 대안은 없이 '몽둥이 진압'에 나서야 하는 기막힌 상황인것이다. '웃을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의 영예는 간 데 없이 '퇴진'구호를 일상적으로 듣는 처지로 돌변했다. 대우차 노동자들의 피투성이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서 보는 많은 사람들은 '지나간 30년동안 열렬히 지속해온 DJ 지지와 애정을 오늘로서 철회한다'는 어느 중년 네티즌의 고백적 선언에 동조한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오래 견디고 참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한다. 대통령은 "나도 어렵다. 이해해 달라"고 말하지만, 대책없이 길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로서는 더 이상 이해할 일도 없고, 더구나 옛날 식 '공안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에게 더 이상 파트너십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의 싹은 어디에도 없는가. 만에 하나, 정치인들에게서 실날같은 변화라도 나타날 가능성은 없는가. 파안대소는 아니라도, 웃음짓는 예수의 얼굴을 기대할 일이 우리에게 다시는 없겠는가.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으로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죽음이 부활하는 삶을 잉태하듯 우리 사회는 아직 '웃을 일'을 남겨두고 있어야 한다. 여야의 개혁지향 세력이 특히 남북화해와 지역구도의 극복이라는 대의(大義)로, 정계개편의 빅뱅을 열었으면 하는 것도 그 마지막 희망의 하나다. 예수의 웃는 얼굴을 이 땅에서 보고 싶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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