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라톤의 희망' 이봉주(李鳳柱ㆍ30ㆍ삼성전자)가 반세기 만에 보스턴 하늘에 애국가를 울렸다.이봉주는 1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 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서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해방이후 사회적 혼란기였던 47년 서윤복, 50년 함기용이 보스턴 월계관을 차지한 이후 51년만의 쾌거다.
영상 9도의 쾌적한 날씨속에 초반부터 선두그룹을 달린 이봉주는 32㎞ 지점부터 실비오 구에라(에콰도르), 조슈아 셀랑카(케냐)등 3명과 각축전을 벌였고 40㎞지점에서 막판 스퍼트로 단독선두를 달려 2위 구에라(2시간10분7초)를 24초차로 따돌리고 한국마라톤 사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봉주는 보스턴 마라톤 10연패를 달성했던 마라톤 세계 최강 케냐의 연승가도에 제동을 걸며 다시 한번 마라톤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했다.
새벽에 날아든 낭보였다. 한국마라톤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인 동시에 반세기만의 쾌거였다. 지난달 보령 전지훈련중 부친 이해구씨의 별세로 1주일여간 훈련을 중단했던 이봉주는 사실 불안감을 안고 보스턴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서윤복, 함기용이후 51년만의 우승도전에다 부친의 별세로 그의 투지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불타올랐다.
이봉주의 역주는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후반부터 선두그룹에서 처지면서 승리를 예감케 했다. 우승후보로 꼽힌 세계랭킹 3위 모제스 타누이(2시간6분16초ㆍ케냐)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ㆍ2시간7분54초) 지난해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엘리야 라가트(2시간7분41초ㆍ케냐) 등이 30㎞지점을 넘어서면서 선두그룹에서 떨어져 나가 이봉주의 발걸음은 속도를 더해갔다.
심한 언덕길이 이어지는 32㎞ 지점인 심장이 터지는 언덕(heartbreak hill)이후 10여명의 선두그룹에서 치고 나오면서 실비오 구에라(2시간9분49초ㆍ에콰도르), 보스턴 마라톤이 데뷔전인 조슈아 셀랑카(케냐)와 함께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애틀랜타 올림픽, 2000년 도쿄마라톤, 2000년 후코오카 마라톤 등 주요 대회마다 막판 스피드부족으로 우승을 놓쳐 '2등 징크스'를 안고 있던 이봉주는 삼파전 양상으로 진행된 37㎞ 지점이후 속도를 높이며 레이스의 주도권을 잡는 승부수를 던졌다.
구에라, 셀랑카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접전을 펼치던 이봉주는 40㎞에서 다시 마지막 스퍼트를 결행했다.
이미 지구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쫓아오기에 급급하던 구에라와 셀랑카는 처지기 시작했고 우승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봉주는 급피치를 올리며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2위 구에라와는 거의 200m나 차이가 나는 완벽한 승리이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이봉주 일문일답
"20일 귀국하는 대로 아버님 산소에 금메달을 바치겠습니다."
17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 51년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긴 이봉주(31ㆍ삼성전자)는 3월 운명한 아버지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렸다.
-우승 소감은.
"서윤복, 함기용 선배들의 영광을 잇고 국민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 반드시 우승하고 싶었던 대회였다. "
-레이스는 어땠나.
"조금 더웠는데 뛰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한번 뛰어본 코스였고 특별히 위협적인 선수가 없어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었다."
-특별한 작전은 있었나.
"난코스인 레이스의 막판에 승부를 걸었다. 30∼40㎞ 구간에 퍼져 있는 언덕들에서 페이스를 올렸다 늦췄다를 반복, 다른 선수들을 지치게 만들겠다는 작전이 먹혀들었다."
-우승은 언제 예감했나.
"33㎞ 지점에서 4명으로 좁혀질 때 우승을 예감했고 40㎞지점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서면서 우승을 자신했다."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전망은.
"물론 우승이다. 귀국하기 전에 에드먼턴으로 가 코스답사를 하는 등 철저히 준비하겠다."
■ 이봉주 한국인 3번째 '월계관'
런던, 로테르담과 더불어 세계 3대 마라톤대회로 불리는 보스턴마라톤은 1897년 출범, 올해로 105돌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대회이다. 참가인원을 1만5,000명으로 제한하는 이 대회는 지금까지 3차례 한국인에게 월계관을 허락했다.
첫 주인공은 서윤복(78). 47년 미군정의 도움으로 보스턴에 도착한 당시 25세의 청년 서윤복은 2시간25분39초의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 광복을 맞은 조국에 크나큰 선물을 했다.
최단신(165㎝)에 아시아인 첫 우승자로 기록된 서윤복은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족패천하(足覇天下)'라는 휘호를 받았다. 당시 감독은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손기정이었다.
한국전쟁 직전인 50년 4월, 보스턴 하늘에는 태극기 3개가 나란히 펄럭였다. 당시 19세였던 함기용은 2시간32분39초로 2번째 우승, 송길윤(2시간35분58초) 최윤칠(2시간39분58초)이 그 뒤를 이어 1~3위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보스턴의 난코스는 한국마라토너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임종우가 57년 대회에 출전, 2시간24분55초라는 한국최고기록을 세웠지만 3위에 머물렀다. 93년 주최측에서 역대 우승자를 초청, 서윤복, 함기용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이스를 펼친 김재룡(당시 29세)은 2시간9분43초로 2위에 랭크, 분루를 삼켰다.
1년 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시간8분9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 기록은 역대 5위기록으로 남아 있다.
51년 만에 우리에게 다시 승전보를 전한 이봉주는 2번째 도전 만에 보스턴마라톤 월계관을 썼다. 94년 황영조(당시 24세)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이봉주는 2시간9분57초로 11위에 머물렀다. 특히 케냐의 11년 연속 우승을 저지한 쾌거여서 외신들의 주목까지 받았다.
/정원수 기자
■황영조 레이스 분석
40㎞전에 승부수를 띄운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엘리야 라가트(케냐) 등이 초반부터 밀리는 것을 확인한 이봉주는 당기고 미는 전략으로 레이스를 쉽게 풀어나갔다.
20㎞까지 선두그룹이 빠른 편이 아닌 1시간 2분대를 유지, 이봉주는 막판 스퍼트를 위한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다.
힘을 축적한 이봉주는 35㎞를 지나면서 조금씩 앞서나가기 시작한 뒤 37㎞때 쯤 선두로 치고 나갔다.
항상 막판에 덜미를 잡히는 일이 많았던 이봉주가 실피오 구에라(에콰도르)의 막판 추격을 따돌렸던 것도 사실 체력안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 선두권 예상기록이 2시간 11분대 였을 만큼 '스피드싸움'이 크게 줄어든 레이스여서 이봉주에게 전반적으로 유리했다.
이봉주의 몸상태도 상당히 좋아보였다. 섭씨 9도 정도로 마라톤에 적합한 날씨이긴 했지만 후반 오르막길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을 텐데 잘 극복했다. 특히 우승후보들이 초반부터 뒤로 쳐지면서 이봉주는 자신감이 부쩍 붙은 것 같았다.
훈련량이 부족했던 이봉주로서는 아베라 등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중반이후 처지면서 한결 쉬운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황영조ㆍ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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