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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현대 시학' 이수정의 시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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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현대 시학' 이수정의 시 5편

입력
2001.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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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학' 4월호에 이수정이라는 이의 시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이 시들은 신인 작품 공모 당선작이다. 그러니까 이수정씨는 이제 시인으로서 스타트라인을 막 떠났다. 작품 뒤의 약력에 따르면, 그는 스물일곱 살이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이수정씨의 시들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활짝 열린 감각의 직접성이다. 좋은 시들이 개념과 논리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진실들을 추구한다고 할 때, 그 진실로 다가가는 길이 꼭 육체적 감각의 직접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브레히트나 엘뤼아르가 보여주었듯, 빼어난 정치시들은 논리의 선조성에 포섭되지 않는 정치적 진실들을 비범한 통찰로 드러낸다. 그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시인들의 남다른 시각(視角) 곧 시각(視覺)이라는 감각이지만, 시각은 다른 감각들에 비해 육체적 직접성이 덜한, 다분히 이성적인 감각이다.

이수정씨의 시들을 감각적이라고 할 때, 그 감각은 온몸에 걸쳐 있다. 예컨대 '아스피린 먹는 사람'이라는 시. "비가 내린다 밤비가/ 나뭇가지를 스친다/ 일 만개의, 일만 오 천 개의/ 잎들이 앓는다/ 기침 소리가/ 어둠의 한 쪽을 찢는다/ 가는 비명이 비명을/ 끌어안는다 섞인다/(.)/ 기침 소리가 땀에 젖어 있다/ 열에 싸인 사람의/ 젖은 숲으로 하이얀/ 아스피린 한 알 녹아들고 있다."

이 시를 읽기에 따라, 아스피린 먹는 사람의 몸은 젖은 숲 안에 있을 수도 있고, 그 몸 자체가 젖은 숲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발열과 통증 그리고 그 몸의 해열과 진통을 향한 아스피린의 녹아내림은 전감각적으로, 육체적 직접성으로 경험되고 묘사된다.

머리칼을 샅샅이 움켜쥔 손가락들에 억새를 비유하는 '억새'나 깨질 듯이 맑은 겨울 아침 풍경 속에서 "치약 냄새 나는"문장 하나를 건져내는 순간을 그린 '겨울 아침에'같은 작품에서도 이런 전감각적 지향은 또렷하다.

명징한 감각에 대한 시인의 지향, 곧 감각의 둔화에 대한 시인의 두려움과 거부는 비만증 환자를 화자로 삼은 듯한 '비곗덩어리'에서 신경증에 가까워진다. "언제나 반투명의 유리가 앞에 있었다. 기형으로 투사된 햇살이 망막에 닿고 있었다. 입술을 대어도 기름이 뜨지 않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고추잠자리 날개의 무늬를 만지고 싶었다.

댓잎을 헤치는 바람소리를 세밀히 듣고 싶었다."

상큼한 맛은 덜하지만, 이수정씨의 감각은 엄승화가 자신의 시적 출발점에서 보여주었던 감각과 친화력이 있어 보인다. 그 감각에 지적 통제라는 사슬을 채울 때, 그의 시는 이하석이나 이성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그 감각의 날이 너무 벼려져 주체 마저 베게 될 때, 그의 시는 김언희에게로 다가갈 수도 있다.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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