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독일 실존주의 소설가 카프카의 작품에서 빌린 이 말을 표제로 한 이승우(42)씨의 새 소설집은 일상 밑바닥을 흐르는 '불안'에 관한 문학적 탐색이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은 익숙하게만 보이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틈새를 흐르다가, 어느 한 순간 일상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며 분출해 나온다.
카프카가 말한 의미는 인간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라고 이씨는 풀이한다. 그의 소설 '사람들은.'는 이 알지 못할 인간 의식과 무의식의 내부로 깊이 탐침을 들이댄 작품이다. 신혼인 나의 누이는 남편과 떨어져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누이는 어느날 나에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집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누군가 소파에 앉아있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이후에도 누이는 거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안방이나 부엌에서 누군가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나는 누이가 아이도 없이 혼자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그런 심리로 표출된다고 짐작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할까도 생각하다가 집에 세를 들이기로 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후한 값을 쳐주고 아파트를 사겠다며 찾아온다.
남자는 이 아파트의 첫 주인이었던 어느 부인의 아들이었다. 부인은 죽는 순간까지 젊었을 때 가출한 아들을 아파트에서 기다렸고,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 아파트에서 언제까지고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소설의 종반에서 누이가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 아니라고 깨닫듯이, 독자들은 이씨의 소설집에 실린 8편의 중ㆍ단편을 읽으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나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로 이씨의 표현은 엽기적이거나 괴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요즘 흔한 구역질나거나 우스꽝스러운 엽기로 빠지지 않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작가의 통찰 때문이다.
'멀고 먼 관계'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우리 사회 가정의 모습에 어떤 균열이 가고 있는가를 드러낸 작품이다. 치과의사인 남편은 애완견만을 애지중지하며 휴일에도 병원에서 지낸다. 회사에 다니는 부인과 아이는 아침 출근길에 그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부인은 휴일에도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은 소설 속 여주인공의 말처럼 우리가 "정말로 집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 있는 건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데뷔 이후 신 앞에 던져진 인간 조건이라는 문제를 종교적ㆍ철학적으로 탐색해온 이씨의 소설세계는 이번 창작집에서 '집'이라는 모티프를 가지고 한층 일상에 가깝게 내려온 셈이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는 낯선 미지의 세계다. 이씨는 "소설 쓰기는 근원적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 이며 "무리(無理)로부터 위탁받은 열정" 이라고 말했다. "길들여진 근육, 질긴 습관의 자연스러움으로 써내려간 소설이 문학을 시궁창으로 집어넣는다. 문학이 빠져 허우적대는 시궁창은 시대, 자본, 권력, 정보, 극장, 독자가 아니라 문학의 웅덩이다. 익숙하게 씌어지는 소설로 하여 소설은 절명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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