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에 사는 주부 박모(35)씨는 집 근처 4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고층건물 신축공사 때문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집앞 도로에는 건축장비와 자재들이 쌓여 있고 건자재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비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있다.
엉성한 울타리만 쳐 놓은 채 공사를 강행하는 곳도 있어 초등학생 두 아들에게 아예 공사장을 '우회'해 다니라고 신신 당부한다.
최근 오피스텔 등 주상복합 건물 신축붐이 일어나면서 주택밀집지역 인근까지 대형 건물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안전문제와 소음, 분진 등 3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지만 구청측은 세수(稅收) 증대를 내세워 '나 몰라라'하고 있다.
■지역 주민 삼중고
13일 오후 H사가 시공을 맡은 강남구 수서동의 한 공사현장. 공사장 울타리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고 울타리 안쪽에서는 대형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땅을 파내고 있다.
돌이라도 밖으로 튀어 나가면 곧바로 사고로 연결되는 상황인데도 안전그물 등은 전혀 눈에 띠지 않는다.
또 공사장과 연결된 대형호스 2개가 뿜어대는 물은 그대로 보도를 따라 흐르고 있다. 주민들은 이처럼 보행권이 실종된 '흙탕물길'을 곡예보행하듯 오가고 있다.
같은 시각 S사가 시공중인 동대문구 장안동의 공사현장. 멀리서부터 현장에서 쏟아내는 쇠를 깎는 듯한 굉음이 진동한다.
행인들은 아예 귀를 막은 채 지나가고 인근 주택이나 건물마다 창문이 꼭꼭 닫혀 있다. 또 폭 5~6㎙의 좁은 도로에는 공사장 대형 트럭이 점령, 골목길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주민 최모(45)씨는 "공사장의 소음, 먼지 때문에 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다"며 "날씨가 곧 무더워질 텐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관할 구청은 수수방관
'집앞 공사'에 따른 각종 폐해에 관할 구청측은 애써 눈을 감고 있다. 가장 중요한 안전문제와 관련, 구청측은 '감리회사측에 일임해 관리 감독권이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공무원이 현장에 자주 나가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며 " 안전문제 등은 감리업체가 알아서 해결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지와 소음 진동 등에 대해서는 구청측이 서울시 보건환경원 측에 의뢰해 기준치 초과여부를 검사토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대형공사가 많은 강남ㆍ영등포구 조차 올들어 단 한건의 의뢰가 없었으며, 동대문구는 먼지 부분은 아예 다루지 않는 등 유명무실한 상태다.
공사장 주변 주민들은 "시공사 '횡포'와 이를 수수방관하는 행정 당국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며 "주민의 안전과 편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고 지적했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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