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ㆍ쟁점대한의사협회는 12일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의해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의사 윤리지침'을 제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료계에선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등의 소극적 안락사가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
이에 대해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1998년 의식이 없는 환자를 부인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사망케 한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 Y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물론 당시 법원은 "의사가 '회복 가능'한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했다"고 보고 살인혐의를 적용해 소극적 안락사로 보는 의사들의 입장과는 배치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의협의 윤리지침 제정을 앞당긴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지침의 최대 쟁점은 제30조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자율적 결정이나 가족, 대리인이 진료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하는 경우, 의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 환자나 가족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무익한 진료를 요구할 경우, 의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한의사협회측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유지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사망의 시기'를 앞당기는 게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에 경제적,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사망의 과정'을 필요 없이 늘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사망 전 3개월 동안 전체 의료비의 30%가 지출되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ㆍ종교단체와 학계 일부에서는 소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면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부터 희생될 가능성이 크며,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안락사를 택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회복 불가능'이라는 의사의 판단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으며, 자칫 경제논리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법ㆍ제도적 문제
현행법은 소극적 안락사를 명쾌하게 금지하고 있지 않고, 회생 가능성 여부에 대한 세부지침도 없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변철식 보건정책국장은 "소극적인 안락사 허용은 형법 등 실정법상에서 먼저 논의가 이뤄지는 게 순서"라며 "이후 사회적 인식과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해 의료법상에서 안락사 허용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미국 등 선진국에선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추세다. 환자측이 치료중단을 요청하는 소송을 내면 법원의 판단에 따라 허용하며, 사망 전 유언장을 통해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1980년 중반 이후 환자의 자발적 의사로 매년 수천 건 씩의 적극적인 안락사(가스, 약물주입 등 인위적 조작을 가하는 안락사)가 행해지다 최근 합법화했다. 미국ㆍ캐나다ㆍ호주에서도 1990년대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그동안 안락사를 묵인해 온 콜롬비아ㆍ스위스ㆍ벨기에 등도 네덜란드와 유사한 안락사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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