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논쟁'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달아 오르고 있다.인간배아 연구 및 복제 문제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가 12일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여기에 여성계 일각에선 그동안 꺼려 왔던 낙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생명의 존엄성'과 '현실 인정'주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현안을 두고 의학계와 시민ㆍ종교 단체, 정부 입장이 날카롭게 대립한 상태여서 쉽게 합의가 이뤄지거나 논란이 잠잠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논쟁을 위한 논쟁'을 지양하고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갖춰가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협의 안락사 허용 방침이 발표되자 시민ㆍ종교단체 등은 13일 "명쾌한 법 규정과 환자의 회생 가능성 여부에 대한 세부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생명윤리위원회 등은 "안락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명백한 살인행위"라며 대대적인 반대운동과 함께 이를 지지한 의사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안락사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 소극적 안락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윤리 문제에 대해 의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문제점을 보완한 뒤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해 말 보건복지부가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가칭) 시안을 발표한 이후 인간 배아연구 및 복제를 둘러싼 윤리성 논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생명공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구성, 수차례 회의와 공개토론회 등을 거쳤지만 워낙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돼 예정된 5월까지 관련 법안 제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의학자들은 "논쟁만 계속 하다가는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의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낙태의 합법화 문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일부 여성 잡지와 여성학자들은 최근 "여성이 처한 사회적 맥락과 연결지어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인정하는 입법화가 필요하다"며 낙태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 해 말 낙태 허용 범위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관련 조항 폐지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의료전문인 최재천(38) 변호사는 "실정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한 소모적 논쟁 때문에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며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안인 경우 생명윤리위원회 등을 만들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시행되도록 제도적, 법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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