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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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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먹이

입력
2001.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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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도 여파가 있었지만, 유럽의 광우병, 구제역 소동은 그래도 다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잠시 접해본 후유증은 대단히 심각해서 종말론적인 징후로 느껴질 정도였다.말을 겨우 하는 어린아이들도 "광우병, 광우병"을 익숙하게 내뱉는 상황, 무엇보다 EU의 '시장정화' 계획에 따라 발병지역의 가축들이 무차별 도살되고 있는 상황은 섬뜩했다.

22년 전 학생으로 처음 유럽에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대학의 도서관과 구내식당이었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껏 볼 수 있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갈증에 떨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읽었었다. 식당에 가면, 옛 학교의 컴컴한 식당에서 콩나물국 한 그릇 겨우 사서 찬밥을 말아먹으면서도 토론에 열을 올리던 고국의 학우들 생각이 나서 더러 목이 메이곤 했다.

농가의 가장 큰 재산인 소를 팔아 자식을 보내곤 했기에 대학이 상아탑 대신 '우골탑'이라 불리웠던 시절에 나는 대학을 다녔던 것이다.

그 시절에 본 독일 농촌의 축사(畜舍)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수십 마리의 젖소들이 중앙의 통로를 향하여 양쪽에 각각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젖통에 유리 파이프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렇게 유리 파이프 간격에 맞추어 세워진 소들에게서 자동으로 짜진 젖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 큰 파이프 속으로 콸콸 흘러들어 모이고 있었다.

그것을 옆에서 느긋이 구경하는, 벤츠 자동차를 모는 농부의 여유 있는 모습은 그 어떤 도시적인 발전 상황보다도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시절 찌든 우리의 농촌 상황을 생각하면 분명 목메이게 부러운 '선진국의 여유와 풍요'였지만, 다른 한편 어릴 적에 식구 같던 순한 누렁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이것이 부러워 해야 할 상황인지 그 반대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교미 또한 '효율적'이어서 암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구멍만 뚫어 놓은 판자 앞에 수소들을 세운 뒤 인공 페로몬을 피워 수소들이 그 구멍에 돌진하여 사정을 하게 한다고 한다.

식용고기가 되고 남은 것은 죽으로 만들고, 그 죽에서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를 다시 소들에게 먹였다. 본디 초식동물인 소가 좀더 빨리빨리 크고 좀더 많이많이 살찌라고 말이다.

그 와중에서 소들을 미쳐 날뛰도록 골수까지 병들었고, 그로 인한 경제파탄을 서둘러 복구하겠다고 이제는 병든 소들은 물론 나머지 성한 소들까지 모조리 도살하여 고기나 가루를 만드는 대신 그저 불태우고 있다.

인간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죄 없는 짐승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인간이 잡식동물인 한, 먹이 사슬 안에서의 죄야 시비해 보아야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그 선을 넘어도 많이 넘은 것 같다. 일부가 필요 이상으로 배부르기 위해서 말이다.

로마 쇠망기의 가장 큰 사회적 패덕의 하나로 꼽히는 먹고 나서 토하는 귀족들의 습관 정도는, 조직적인 이윤추구로 나타나는 현대인의 탐욕에 비하면 가벼운 옛날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왜 먹이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었을까.

광우병, 구제역은 우리가 지향해 마지않던 선진국에서의 현상이다. 그 '발전된' 모습을 우리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우리도 평생 몇십센티 움직이지 못한 채로 사육되는 닭들의 상황쯤은 오래 전에 익숙한 것이 되어 버렸을 만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우리 나라에서 광우병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지만, 한편 안도할 겨를마저 없도록 세상은 마구 돌아간다. 이즈음 밥을 먹다 보면 부쩍 대책도 없이 묻게 된다. 어떻게 먹고, 또 나누어 먹어야 할 것인가. 우리 겸허하게 조금 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전영애ㆍ서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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