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고 엄마의 생애를 돌이켜 보니, 내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였는 지 한탄스럽다.(중략) 돈과 명예를 좇느라 정직하게 살면 손해라는 생각도 가졌었지. 하지만 너희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물려주고 싶다.”12일 이화여대 언론홍보학부 ‘매스컴과 사회’ 수업 시간. 이제 스물 남짓한 여대생들은 수일밤을 고심하면서 쓴 유서를 내 놓으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되돌아봤다.
217명이 작성한 유서 중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무한경쟁’사회에 물들어가는 자신을 반성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나는 사람을 많이도 죽였다. 사람들을 밟고 올라갔고, 그들의 자존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던 아픔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뿐이다.”“어차피 빈 손으로 가는 건데 왜 그렇게 세상 것에 욕심을 내고 순수함을 잃어버렸는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장기 기증과 재산 환원을 다짐한 ‘아름다운’ 유서도 눈에 띄었고, “결혼 못하고 죽으니 수의로 웨딩드레스를 입혀 달라.”는 등 ‘익살’이 묻어나는 유서도 적지 않았다.
“저 어릴 적에 한 밤 중에 자다 깨서 안방으로 달려가곤 했잖아요. 모기 잡아 달라고. 어떻게 한번도 귀찮아 하지 않으셨어요.” “가끔씩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나를 붙잡고 여러 이야기를 해 주시던 아빠.
엄마가 입시 준비하는 아이 데리고 뭐 하는 거냐고 야단치시면 터벅터벅 주무시러 가시던 아빠. 하지만 저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답니다.”
여대생들 답게 ’아빠’를 두고 먼저 떠나는 절절함이 배어 있는 ‘사부곡’도 줄을 이었다.
수업을 진행한 주철환(46) 교수는 “유서 미리쓰기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인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라며 “남은 인생 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각성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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