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기자 양반, 포켓볼 한 게임 하실라우?"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두루넷빌딩 지하에 자리잡은 한국당구아카데미. 4구경기 120점밖에 안 되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구력이 7년인데, 환갑이 넘은 할머니와 포켓볼을 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심 젊은 미모의 여성과 경기를 갖게되길 기대했건만. 경기 시작전 '어떻게 적당히 할머니의 기분을 맞춰드려야 할까' 고민하는 데 당구아카데미의 손형복(47) 원장이 한마디 충고한다.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을거요. 최선을 다해야 할 걸."
김유양(64) 할머니의 초구. '공들이 제대로 흩어지지 않아 다음공 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초구샷에 공 2개가 함께 구멍에 빠지자 눈이 번쩍 뜨였다.
3년전 송파노인복지관에서 처음 포켓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김할머니는 당구의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처음엔 눈도 흐릿하고 팔도 떨려 엄두도 못냈다"지만 당구아카데미에서 6개월 이상 배우고 난 뒤 선수 수준의 경지에 올랐다.
"한참 당구를 배울 때는 방 천정이 당구대로 보였고 집에서 틈만 나면 거울앞 식탁위에 파란담요를 깔고 열심히 샷연습을 했다"는 김할머니는 이젠 명실상부한 노인회관 포켓볼 최고수. 대회가 열리면 항상 우승을 도맡아 하자 요즘엔 아예 출전도 안시켜 준단다.
"다음 공까지 생각하며 쳐야하니까 치매예방에도 최고고 당구를 치고 나면 얼마나 잠이 잘오는 지 몰라." 김할머니는 포켓볼이 '젊은 여성보다 나이든 사람에게 더 좋다'고 주장하는 노인당구 예찬론자이다.
약 1시간 당구대 주위를 돌면 1㎞정도의 걷기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계속 허리를 굽혔다 펴니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한다.
결국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경기는 김할머니의 완승으로 끝났다. 완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옆에서 열심히 포켓볼 연습을 하고 있던 김세희(10ㆍ중대부초 3년)양과 눈이 마주쳤다.
'한판 더?' 분풀이를 위해 초등학교 여학생과의 맞대결도 생각했지만 왠지 더 큰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슬그머니 큐대를 내려놨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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