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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섭 기자의 음식과 세상 / 텁텁한 메밀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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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섭 기자의 음식과 세상 / 텁텁한 메밀냉면

입력
2001.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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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부근에 숯불고기와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서초 사리원'이란 식당이 있다. 지하에 대형 기계식 메밀방아까지 들여놓고 순메밀 가루로 평양식 전통 냉면을 뽑아내는 보기 드문 곳이다. 툭툭 끊어질 듯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면발 덕분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질기고 찰진 면발의 '함흥식'냉면이 메뉴판에 등장했다. 요즘엔 메밀방아를 설치한 이유가 무색해질 정도로 순메밀 냉면의 기세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젊은 고객들이 퍽퍽한 메밀 맛을 싫어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젊은이들은 밀가루나 고구마 전분을 듬뿍 넣어 끈기를 살려야 좋아합니다. 우리야 더 적은 비용에다 구하기 쉬운 재료로 편한 장사를 하는 거죠."식당 주인의 설명이다.

듣고 보니 냉면처럼 신ㆍ구세대의 입맛 차이가 확연한 음식도 드문 것 같다. 본래 냉면은 배고프고 궁핍하던 시절, 추운 지방 사람들이 가장 흔히 구할 수 있었던 잡곡(메밀)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음식.

그래서 냉면의 면발 하면 평양식, 함흥식 할 것 없이, 거무튀튀한 빛깔에 꾸덕꾸덕하면서도 거칠고, 입안에서 툭툭 끊기는 듯한 메밀면이 원조다.

밀가루나 감자ㆍ고구마가루 따위를 섞어 쫄깃쫄깃하고 매끄럽게 맛을 낸 소위 '함흥식'면발은 엄밀히 따지면 서울 깍쟁이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한 '서울식'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함흥냉면의 대명사로 통하는 서울 오장동 냉면만 해도 굵고 까칠까칠한 메밀가닥이 그대로 씹히는 면발을 최고로 치지 않던가.

하지만 요즘엔 신세대의 입맛에 따라 냉면의 주류도 변하고 있다. 거친 메밀면은 실향민이나 구세대의 기호품 정도로 바뀌고, 하얀 빛깔에 끈기있고 질긴 전분 면발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냉면에 대한 기호의 차이는 단순한 '향수'의 차이일까.

서양 사람들이 요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기는 빵 중에 호밀이나 귀리로 만든, 검고 거친 빵이 있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가난한 피지배층의 음식이었던 이 잡곡빵들이 이젠 결이 곱고 흰 밀가루 빵을 식탁에서 밀어낼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우리의 신세대들이 메밀의 풍부한 질감에 눈을 뜰 날은 과연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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