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지 안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거짓말, 거짓말이다." 결혼생활의 실패로 자살한 미국의 현대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이렇게 자문자답한 뒤 "슬픔만이 거기에 있다"고 자신의 한 시에서 단정했다.왜 결혼(이라는 계약)은 슬픈가, 독신이 더 나은 대안은 아닐까?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 치밀한 실증적 분석으로 답한 책 두 권이 번역됐다.
미국 UCLA대학 정치학교수인 캐럴 페이트만의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이후 발행)은 이른바 급진적 페미니즘의 고전적 텍스트이다.
'혼자 사는 여자, 백마 탄 남자'(문학세계사 발행)는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카우프만이 여성 독신생활의 현상과 문제를 '마리 클레르' 지 독자에 대한 광범한 앙케트 조사로 규명한 흥미로운 책이다.
페이트만의 논지는 분명하다. 시민사회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근대 자유주의의 사상적 기반인 사회계약론은 가부장적 질서를 당연한 전제로 삼음으로써 성적 계약의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성 지배, 여성 복종' 이라는 전통사회의 가부장제가 따라서 근대사회에서 더욱 공고화됐다고 본다.
자유롭게 계약하는 '개인들' 이란 실제로 '남성들' 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계약은 자유에 관한 이야기지만, 성적 계약은 예속의 이야기" 라며 결혼계약, 고용계약, 매춘계약, 대리모계약에 은폐된 여성의 남성 예속성을 비판적으로 규명했다.
카우프만은 다른 관점에서 페미니즘의 문제에 접근한다. 왜 여성 독신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가 하는 의문이 그의 출발점이다.
인디언 여인과 잔 다르크, 조르주 상드, 엠마 보바리에 대한 역사적 사례 고찰을 거쳐 그는 현재의 '혼자 사는 여자' 의 초상을 그린다(그가 보여주는 프랑스 독신여성의 평균적 의식은 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는 이른바 '화려한 싱글' 을 꿈꾸는 여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카우프만은 '내가 마음 먹은대로 인생을 설계하고픈 욕망' 에서 출발한 독신여성의 의식 한쪽에는 석기시대부터 이어져온 족쇄와 같은 규범이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몸과 마음을 가정에 헌신하는 여인' 이라는 규범이다. 이 충동과 규범의 사이에서 독신여성의 생활은 지속적으로 심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백마 탄 왕자'는 이럴 때마다 '화려한 싱글' 을 찾아오는 갈등의 상징이다. 그 갈등을 카우프만은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재미있게 제시하면서 "여성 독신자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기저 구조에 대한 이의 제기" 라고 진단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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