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학원들이 수업료를 받고 학생들의 아침잠을 깨워준다. 수능시험 뿐 아니라 각 고교의 중간ㆍ기말고사의 예상문제를 일일이 찍어준다. 학교 교실에서 사라지고 있는 몽둥이 소리가 학원가에서는 밤늦도록 울려퍼진다.“기상에서 취침까지 학생을 놓치지 않습니다.”
크게 바뀌는 2002학년도 입시제도에 맞춰 서울 강남 일대의 보습학원들이 이런 모토를 내건 ‘관리형’으로 탈바꿈했다.
학생부의 입시비중이 높아지자 아예 학교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행하는 학원들이 전례없이 성황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중간고사가 끝나면 학생부를 들고 담임교사 대신 담임강사를 찾아간다.
■학원 모닝콜로 시작하는 하루
서울 강남 K고 2학년 김모(17)군의 일과는 학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시작한다. ‘모닝콜 서비스’는 학생관리에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최근 경쟁적으로 도입됐다. 새벽 강의는 논술, 또는 구술면접 대비. 필요에 따라서는 수학등 부족한 과목을 집중 지도받을 수 있다.
김군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다시 찾는 시간은 오후5시30분.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군은 뛰기 시작했다. 한번이라도 지각하면 바로 집에 전화가 오고 3번 결석하면 아예 제적되는 등 출결관리도 어느 학교보다 엄격하다.
김군은 고1때부터 2년째 다니는 C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필답고사의 치열한 관문을 통과하기도 했다. ‘자질이 떨어지는 학생은 안받는다’는 게 학원 방침이다. 국ㆍ영ㆍ수 3과목 강의가 끝나는 시각은 오후9시. 이때부터 밤 11시까지는 학원독서실에서의 자습시간이다.
학원숙제가 턱에 차오를 정도로 많지만 조금이라도 안하면 볼기에 체벌이 가해진다. 매시간 치러지는 쪽지시험을 통과 못하면 담임 강사의 1대 1 지도하에 특별자습을 각오해야 한다.
■공교육 활성화, 학원이 책임진다
“K고 2학년은 이번에 이 문제가 나옵니다.” 중간ㆍ기말고사를 3~4주 앞두고 학원은 학생들을 학교별로 재편성한다. 동시에 학원측은 최근 5년간 학교별 학년별 기출문제를 분석한 자료를 배포하고 매주 예상문제 풀이가 이어어진다. 당연히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학교성적도 월등하다.
S학원 관계자는 “학교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를 먼저 학원에 보고토록 하고 꼭 일주일에 한번은 학부모와 상담을 갖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학원의 주ㆍ월 단위 정기시험 결과가 집으로 통보되고 ‘숙제 안해오면 볼기 3대, 결석 3번이면 제적’ 의 규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김군도 “담임선생님은 아직 내 이름도 잘 모르지만 강사는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개혁에도 살아남는다
학생ㆍ학부모들이 매를 맞거나, 잠에서 깨는 데 까지도 돈을 지불하려하는 데 사교육비가 늘지 않을 수 없다. 대학마다 전형방법이 천차만별로 달라지자 학원들은 고3 학생에 대해 ‘맞춤식 관리’에 들어가고 부족한 과목은 다른 학원으로 위탁하기까지 한다.
새 입시제도와 교육개혁을 비웃는 연간 7조원 과외비의 비밀은 결국 교육 수요자측에 있다는 게 최근 학원가의 변화를 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교에서는 한대만 맞아도 경찰을 부른다며 난리치는 학부모도 학원에서는 더 때려주길 바랍니다. 공부를 다그칠수록 많이 찾아오지요. 수많은 제도변화 끝에 결국 학원이 과거 입시 명문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게 아닌가요.”16년간 교편을 잡다 5년전부터 A보습학원을 운영중인 김모씨의 말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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