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57차 유엔인권위원회는 일본의 불충분한 역사인식과 과거사 청산 책임에 대해 남북한이 함께 나서 성토를 하고, 이에 대해 일본측이 반박을 하는 열띤 공방의 장이었다.이날 유엔인권위 회의는 당초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공식의제였으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가 가세되면서 남북한과 일본, 3자가 반박과 재반박을 거듭하는 바람에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3시간 30여분이나 계속됐다.
한국과 일본이 유엔 무대에서 과거사 문제를 놓고 정면 격돌함으로써 양국간의 외교마찰은 더욱 첨예하게 국제사회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포문은 기조연설에 나선 정의용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먼저 열였다. 그는 "최근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일부 역사교과서가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을 과거보다 오히려 후퇴시키거나 삭제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의도적으로 은폐ㆍ축소한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 대사는 이어 "이와 같은 역사의 호도ㆍ왜곡은 98년 '한일 동반자관계 공동선언' 당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죄한 것과는 배치되는 것"이라며 "역사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김성철 참사관이 옵서버 발언을 통해 "일본은 오키나와(沖繩) 주둔 미군이 14세 일본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한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하면서도 다른 국가 여성들에게 저지른 반인륜 범죄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며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전혀 없다"고 성토했다.
하라구치 고이치(原口幸市) 일본 대사는 답변권을 통해 "일본교과서 검정제도하에서는 교과서 집필가가 역사교과서 내용을 선택하는 자유가 있다"며 일본 정부에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하라구치 대사는 또 "일본정부는 군대위안부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으며 도덕적 책임을 감안해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측 윤병세(尹炳世) 공사는 답변권 행사에 나서 "유엔인권위 특별보고관이 보고서를 통해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권고했음을 상기시킨다"고 반박했다.
윤 공사는 "일본은 겸허하고 솔직한 자세로 잘못된 과거역사에 대해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러한 반인륜적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라구치 대사는 2차 답변권을 얻어 "일본 정부의 보상의무는 한국 정부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의 양자 또는 국제협정을 통해 모두 완전히 해결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 대사는 2차 답변권을 행사, "아시아여성기금은 위로금의 성격으로서 일본 정부가 2차대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도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공식적ㆍ법적인 보상의무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일본측 주장을 재반박했다.
이에 앞서 북한의 김용호 서기관도 답변권을 행사, 일본측을 비난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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