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기소할 때는 농구공 크기만한 사건이었으나 지금은 탁구공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10일 한성기 피고인 등 총풍 사건 3인방에 대한 선고공판을 끝낸 뒤 항소심 재판부가 기자들에게 한 이 같은 언급은 검찰이 사건 전모를 지나치게 부풀렸음을 시사한다.
1심과 항소심 재판을 거치면서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됐던 총풍 사건이 실체는 실종된 채 '돌출적인 해프닝성 사건'으로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총풍 사건의 실체가 검찰 발표내용보다 축소되리라는 징조는 1심 재판에서부터 엿보이기 시작했다. 검찰은 1998년 10월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회창 총재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연계 여부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며 총풍 3인방의 배후 가능성을 암시했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정치권 연계 여부는 기록상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 사건을 '정치 지망생들의 과잉 충성에 기초한 사건'으로 축소, 해석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이날 선고공판에서 총풍 사건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각자의 역할과 모의 장소 및 준비 과정 등을 종합해 볼 때 무력시위 요청을 위한 사전 모의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3인방의 준비과정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한성기 피고인이 대북 사업차 베이징을 방문한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대신 "한성기의 도를 넘긴 지나친 행동 때문에 마치 휴전선 등에서의 무력시위를 요청한 듯한 결과를 낳게 됐다"고 말했다. 한씨의 준비되지 않은 '돌출 발언'(무력시위 요청)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이른바 총풍사건이 됐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1심에서 법정구속까지 된 3인방에 집행유예를 선고, 석방한 것도 무력시위 요청의 우발성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씨가 오정은ㆍ장석중씨와 사전 모의가 없는 상태에서 독단적으로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것은 재판부가 사건 실체를 오인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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