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물과 사상'4월호에는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으로 지식인 사회의 스타가 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두번째 저서 '트러스트, 사회 도덕과 번영의 창조'에 대한 서평이 실려 있다. 서평 필자는 민주당의 김근태 최고위원이다.김 최고위원은 이 글에서 미국과 일본을 '고신뢰사회'의 대표적 예로 꼽는 후쿠야마의 논거들이 매우 작위적이고 황당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저자가 제시하는 '신뢰'라는 아젠다에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투명성의 제도화와 관행화를 향한 개혁이 우리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기자는 이 서평의 밋밋한 내용보다는 그 필자가 정치인이라는 데 더 눈길이 갔다. 조선조만 치더라도, 적어도 50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이 곧 문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을 때, 그 시나 학문은 그들이 펴는 정사와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다.
그것의 제도적 기반이었던 신분제나 과거제는 전근대적 악풍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과거를 지닌 나라의 정치권에 문필가나 지식인랄 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좀 신기하다.
물론 정치인들 가운데는 미끈한 학력에 어마어마한 학위를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학벌이 지식인적 감수성이나 문기(文氣)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승만이나 윤보선이 대통령이 된 데는 그들의 화려한 학력도 직간접적으로 한몫 했을 테지만, 그들에게도 문기랄까 지식인다움이랄까 하는 것은 없었다.
박정희 이래의 군인 대통령들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상업 고등학교 졸업으로 정규 교육을 마친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오히려 사색인 기질이나 문필가 기질이 짙게 묻어난다. 투박한 문체에 실린 그의 '옥중 서신'은 적어도 남이 써준 것은 아니다.
외국에는 현대 정치인들 가운데도 문기가 짙은 이들이 있다. 정치적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윈스턴 처칠은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프랑수아 미테랑도 문필가 의식이 강했다.
레오폴드 생고르나 바츨라브 하벨은 정치인으로보다는 문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샤를 드골은 군인 출신이었음에도 뛰어난 문필가였다. 이들은 말하자면 지식인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이 꼭 지식인이거나 문필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골프장에서 세월을 보내며 보좌관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설문 정도는 더러 자신이 만들고 기회가 닿으면 신문이나 잡지에 자신이 직접 기고를 하고 여가에는 시나 소설을 읽는 정치인이 몇 사람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남보다 애국심이 덜하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터인데, 그 애국심에는 우리 언어와 문학에 대한 사랑도 포함될 것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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